[부산 남구] 시간을 따라 걷다: 부산박물관 야외 기념물들
본문 바로가기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부산 남구] 시간을 따라 걷다: 부산박물관 야외 기념물들

728x90

부산 남구 대연동의 부산박물관 앞에는 다양한 기념물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부산] 부산의 모든 역사 기록을 담다, 부산박물관

1. 부산박물관부산 남구 대연동의 부산박물관입니다. 1977년 9월 30일에 부산시립박물관이 세워지고, 두 차례 이름이 바뀌어 1999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으로 그 명맥을 이

mspproject2023.tistory.com

정문 기준 오른편부터 보겠습니다.

19-20세기 조선 때 지어진 묘 앞에 세워지는 석등 장명등(長明燈)입니다.

그 옆에 3기의 문관석(文官石, 묘 앞에 세워지는 문신의 석상)이 보입니다.

APEC 정상회의 참가국 영부인 몇 분이 이곳을 찾아와 기념식수를 심은 것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APEC 정상회의 참가국 영부인 방문 기념식수
한국 권양숙(Mrs. Yang-suk Kwon)
호주 쟈넷 하워드(Mrs. Janette Howard)
타이페이(대만) 린 예메이잉(Mrs. Lin Yeh Mei-ing)
홍콩 셀리나 창(Selina Tsang)
인도네시아 끄리스띠아니 헤라와띠 유도요노(Mrs. Kristiani H. Yudhoyono)
페루 엘리안 까르쁘 데 똘데도(Mrs. Eliane Karp de Toledo)
미국 로라 부시(Mrs. Laura Bush)
베트남 응웬 티 빈(Mrs. Nguyen Thi Vinh)
2005.11.19.
부산박물관(Busan Muesum)

정문 기준 왼편을 살펴봅니다.

10세기 고려에 세워진 만덕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인 부도(浮屠)입니다.

11-12세기 고려 시대에 세워진 석조여래입상입니다.

그 옆에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석조여래입상입니다.

박물관 본관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가봅니다.

 

[부산] 부산의 모든 역사 기록을 담다, 부산박물관

1. 부산박물관부산 남구 대연동의 부산박물관입니다. 1977년 9월 30일에 부산시립박물관이 세워지고, 두 차례 이름이 바뀌어 1999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으로 그 명맥을 이

mspproject2023.tistory.com

통일신라시대였던 9세기에 세워진 석등과 18-19세기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문관석이 있습니다.

박물관 본관 입구 계단 바로 왼편에는 통일신라시대였던 9세기에 합천군 가회면에 세워진 보물제353호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복제품이 입구 바로 왼편에 있습니다.부산공예학교(한국조형예술고등학교)에서 복제하고 대양라이온스클럽이 기증했다고 하네요.

이제 박물관 본관 왼편 길로 가봅니다. 처음 맞이하는 것은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상입니다.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상
1963년 1월 1일 부산시는 정부직할시로 승격하였다. 이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산 서면 로타리에 이 탑을 준공 제작 하였다. 부산을 나타내는 상징탑 중앙위치에 정의와 전진의 햇불을 높이 치켜든 청년 남녀상이 조각가 박칠성에 의하여 청동으로 주조된 것이다. 이 기념물은 1980년에 부산지하철 1호선 건설공사로 인하여 철거하게 됨에 따라 동상부분은 부산시립박물관에 이전 하였다. 우리 시민들이 부산의 역사를 상기하며 무한히 발전하는 부산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이와 같이 다시 재건하게 되었다.

박물관 옆에도 많은 기념물이 있네요.

조선 시대에 지어진 석탑(石塔)의 옥개석(屋蓋石, 지붕처럼 덮는 돌)입니다.

18-19세기에 지어진 향로대입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배례석(拜禮石)입니다. 배례석은 절에서 배례를 위해 향이나 음식을 올려두는 곳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소통사(일본어 통역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비석과 비각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입니다.

출처 : 부산시금석문 해제

비에는 조상 유원각 선생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
(柔遠閣先生埋案感古碑 및 碑閣)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유원(柔遠)이란 '멀리 있는 것을 유화한다'는 뜻으로 일본에 대한 조선의 교린(交隣) 외교정책을 뜻한다. ‘선생’은 일본과의 교린 업무에 종사한 조선 시대 동래부에 소속된 소통사(小通事, 조선 후기 하급 일본어 통역관)를 일컫는 말로, 후손들이 이들의 명단과 업적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광무 10년(1906) 옛터에 집을 지어 '유원각'이라 칭하고 비를 세운 것이다.

비문에는 비를 세운 목적과 비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 왜관(倭館, 조선시대 일본과의 외교와 무역을 위해 일본인이 살 수 있도록 만든 공간)과 개항기 부산의 역사 및 한일 관계사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돌로 만든 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비와의 모양과 짜 맞추는 방법도 전통적인 것과 매우 달라서 건축학적으로도 주목된다.

이 비는 원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754-17번지 산 중턱의 가정집 마당에 있었으나 2000년 9월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매안(埋案)'은 선조의 신주나 물건을 묘소 앞에 묻는 것을 말하므로 박물관에서는 비를 옮길 때 땅 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선생안(先生案) 등 관련 서류를 찾기 위해 조사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하였다.

자헌대부 배신기 처 열부 정부인 성씨 정려비 (資憲大夫裵信己妻烈婦貞夫人成氏旌閭碑)입니다.

출처 : 부산시금석문 해제

위 정려비에는 아픈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모신 자헌대부 배신기의 부인 창녕 성씨를 칭송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동래읍성 인생문의 문명석(門名石)은 동래구청사 유적전시관에서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출처 : 국제신문

2025년 3월 18일 오전 11시 30분, 동래구청 신청사로 인생문의 문명석이 돌아왔고, 이는 동래구청 유적전시관에서 지금까지 전시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가봐야곘어요.

이제 눈을 돌려 부산박물관 소강당쪽으로 가봅니다.

호천석교비
(虎川石橋碑)
이 비석은 현재 범일동 범내[虎川]에 있는 나무다리가 썩어 돌다리로 바꾸면서 1711년(숙종37)에 세운 기념비이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50cm, 너비 58cm, 두께 20cm이다.
부산시 동구 범일4동 옛 범곡파출소 뒤편 길가에 있던 것을 200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부산진성서문외석교비
(釜山鎭城西門外石橋碑)
이 비는 부산진성의 서문 밖 돌다리를 수리할 때 세운 기념비로, 1785년(정조9)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의 오른쪽은 수리한 이유를, 가운데는 시주한 사람들의 이름을, 왼쪽에는 만든 연대를 적고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13cm, 너비 61cm이다.
이 비는 성남초등학교 뒤편에 있던 것을 198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제 다시 옆으로 눈길을 돌려봅니다.

18세기 전반에 세워진 비석받침들입니다.

17-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직역하면 '교룡의 머리'인 이수(螭首)입니다. 이수(螭首)는 수호의 의미를 갖도록 한 비신의 머릿돌입니다.

1799년(가경 4년, 정조 23년) 1월에 경상좌병영((현)울산)에서 기장현의 경계에 들어와 당시 진상품인 전복을 채취하는 폐단을 조정에서 금지시킨 것을 기념한 효암리 월경 전복채취금령 불망비(孝岩里越境全鰒採取禁令不忘碑)입니다.

이제 다시 뒤로 돌아봅니다.

1774년에 세워진 동래부사이택수선정비(東萊府使李澤遂善政碑)입니다.

척화비(斥和碑)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
척화비병인양요(1866년에 조선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복수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와 신미양요(1871년에 미국 군함이 교역 등을 요구하며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를 겪은 흥선대원군이 서양 강대국의 침략에 대한 백성들의 경계심을 드높이고자 고종 8년(1871년) 서울과 전국의 주요 지역에 세운 비이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할 때 싸우지 않는 것은 화친(和親)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우리 자손만대에 경계한다'라는 강한 경고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고종 19년(1882년)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조선이 서양 강대국과 국교를 맺게 되면서 척화비는 대부분 철거되었다.
이 척화비는 원래 부산광역시 동구 자성대 공원 부근의 부산진성터에 있었으나 1924년 용두산공원으로 옮겼다가 1978년 이곳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19세기 조선에서 쓰였던 말이나 소가 절구 위에 있는 돌을 끌어서 돌려 곡식을 빻도록 만든 연자방아입니다.

그 옆에도 다양한 기념물들이 있습니다.

18세기 후 그리고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석조(石槽)입니다.

20세기 전반에 세워진 오층석탑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돌쩌귀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돌쩌귀입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돌우물[石井]입니다.

동래부사를 지넀던 유심의 선정을 기념하는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도 있죠.

동래부사 유심 선정비(東萊府使柳淰善政碑)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
이 비는 효종 2년(1651) 9월, 백성을 잘 다스리고 떠난 동래부사 유심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동래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비의 뒷면에는 비를 세운 때와 비를 세우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유심(柳淰)은 1649년 11월부터 1651년 7월까지 동래부사를 지낸 뒤 바로 경상도 관찰사로 승진하였고, 마지막에는 도승지(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의 정3품 관직,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과 비슷함)를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평민 신분으로 동래부사가 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 좌절하여 어린 나이에 굶어 죽은 뒤 서울에서 재상(宰相,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 보던 2품 이상의 벼슬 또는 벼슬에 있던 벼슬아치) 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 어른이 되어 동래부사가 되어 전생의 어머니를 만난다는 ‘전생 모자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비는 동래읍성 서문 밖 지금의 KT프라자 동래점 뒤쪽 도로변에 있었는데, 2001년 4월 도로공사 등으로 인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유심 선정비는 당시 동래부 7개면 모두에 1기씩 세워졌는데, 현재는 해운대구 반여동에 이 비보다 작은 것이 하나 더 남아있다.

이 비는 현재 부산 지역에 남아있는 선정비 가운데 아주 큰 편이고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어 당시의 조각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건물쪽으로 돌아봅니다.

동래남문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1호
이 비는 임진왜란 때 동래 등에서 순국하거나 공을 세운 사람들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현종 11년(1670년) 당시 가장 치열한 싸움터였던 동래읍성의 남문 밖 농주산(지금의 동래경찰서 자리에 있던 낮은 산)에 세운 것으로 '동래충렬비'라고도 한다.

비문에는 선조 25년(1592년) 4월 14일 부산진성 싸움에서 정발 장군이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사실, 경상좌병사(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낙동강 동쪽 경상도 육군의 최고 관직명) 이각이 비겁하게 도망친 일, 이튿날 동래부사 송상현이 왜적에 맞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일, 지원을 온 양산군수 조영규와 동래부 군관민이 보인 순국충절의 사실, 비의 건립 과정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임진왜란과 동래읍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비는 숙종 35년(1709년) 충렬사의 옛터에 별사(別祠)를 세울 당시에는 뜰 가운데에, 영조 12년(1736년) 별사를 없앨 때에는 남문 안길의 왼쪽으로 각각 옮겨졌다. 그 뒤 1978년 도로 확장공사 등으로 비의 보존에 어려움이 있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비가 오래되어 원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워지자 박물관에서는 1995년 탁본 자료를 바탕으로 비의 오른쪽에 파손되기 전과 비슷한 모형비를 세웠다.

오른쪽의 비는 동래남문비의 복제모형입니다.

그 왼쪽에는 동래남문비의 이수와 비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부산박물관 야외 전시장은 단순한 박물관 외부 공간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현장이자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었습니다. 통일신라부터 조선 후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념물과 석조 유물은 각각의 시대가 남긴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 선 순간 우리는 과거와 오늘이 만나는 교차점에 서 있었습니다. 특히 부산이라는 도시가 걸어온 외교, 전쟁, 행정, 민간 신앙 등의 다양한 역사적 순간들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장소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부산] 부산의 모든 역사 기록을 담다, 부산박물관

1. 부산박물관부산 남구 대연동의 부산박물관입니다. 1977년 9월 30일에 부산시립박물관이 세워지고, 두 차례 이름이 바뀌어 1999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부산광역시립박물관으로 그 명맥을 이

mspproject202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