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의 전설적인 남부의 여왕, 쿠르만잔 닷카 기념상(in 비슈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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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키르기스스탄의 전설적인 남부의 여왕, 쿠르만잔 닷카 기념상(in 비슈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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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친기스 아이트마토프 공원의 중심 길을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비슈케크 킬로미터 제로.

 

비슈케크에서 다른 주도까지의 거리는? 비슈케크 킬로미터 제로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공원 남부에 2009년에 지어진 킬로미터 제로(도로원표, Нулевой километр)가 있습니다. 이 비슈케크 타임캡슐 겸 킬로미터제로는 이곳에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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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신전처럼 웅장한 구조물이 보입니다. 그 가운데에 2004년부터 한 여인석상이 서있습니다.

지도 출처 : 2gis

쿠르만잔 닷카(Курманжан-датка, 1811-1907)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쿠르만잔 마마트벡 키지 기념상(Памятник Курманжан Маматбек кызы)입니다. 키르기스스탄 역사상 전설적인 여성 지도자이죠. este.kg에 따르면, 그녀는 여성의 권리와 이익을 완전히 무시했던 역대 무슬림 국가 역사 속에서 최초이자 아직까지 유일한 여성 통치자로서 이슬람 세계, 특히, 중앙아시아 이슬람 세계에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1811년, 그녀는 오시(Ош) 근처 알라이 산맥의 오록 마을(айыл Орок)에서 태어나 자연과 함께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결단력을 익힌 그녀는 불리할 때는 고집을 꺾고 유연하게 물러날 줄 아는 지성과 투사처럼 뛰어나가야 할 때는 나갈 줄 아는 용기를 겸비하게 됩니다.

 

처음 그녀는 17살 때, 쿨세이트(Кулсейит)라는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그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도망쳐옵니다. 당시 이슬람 규범과 동양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결국 그녀는 3년만에 그와 이혼하고 알림벡 닷카(Алымбек-датка, ?-1862)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정치와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합니다.

부하라 토호국의 무잡파르와 코칸트 칸국의 후도야르한의 모습 (출처 : wikimedia)

1862년, 코칸트 칸국(1709-1876)의 궁중 음모에 연루되어 남편 알림벡 닷카는 사망했고, 그 뒤를 이어 그녀가 닷카 자리에 오르게 되었죠. 이는 정말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지지를 받고 또 1000명 이상의 용맹한 기병인 지깃(джигит)을 보유했던 그녀는 1863년, 부하라 토호국(1785-1920)의 무잡파르(Музаффар, 1834-1885)와 코칸트 칸국의 후도야르한(Худояр-хан, 1835-1886)에게 닷카라는 호칭을 받게 됩니다.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게 된 것이죠.

러시아군을 만난 쿠라만잔 닷카의 키르기스군 상상화

시간이 흘러, 1876년, 러시아군의 침공에 맞서 쿠르만잔 닷카는 다섯 아들과 함께 알라이에서 저항을 이끌었습니다. 1,500명의 지깃과 함께 산악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후퇴했고, 피신 도중에 위구르족에게 습격당해 큰 피해를 입었죠. 끝내 러시아군에 포위되어 붙잡혔지만, 그녀의 영향력을 인정한 러시아는 특별한 예우를 갖춰 그녀를 대우했으며, 현지인들도 그녀의 투지에 감동받았다고 전합니다. 많은 고민을 하던 그녀는 결국 아들들의 목숨과 관직 보장이라는 선택으로 결국 한 시대의 저항을 끝내고, 또 다른 권력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쿠라만잔 닷카의 아들의 부인의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하는 세관원의 상상화

이후 러시아의 지배 속에서 살던 중, 러시아 세관원이 그의 아들 중 캄치벡(Камчыбек)을 검문하러 왔다가 밀수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때 그들은 그의 아내의 머리칼을 잘라버리는 등 모욕하였는데, 이에 분노한 캄치벡이 그 세관원과 경비원을 살해합니다.

핀란드의 칼 구스타브 에밀 만네르헤임 남작과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가 남부의 여왕의 유르트에서 그녀의 손자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출처 : 만네르헤임)

이 사건으로 캄치벡을 포함한 쿠르만잔 닷카의 가족 일부가 잡혀가게 되었고, 쿠르만잔 닷카는 제발 아들과 손자들의 목숨만은 구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결국 아들 캄치벡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사형당합니다. 그 충격으로 쿠르만잔 닷카는 오시 인근의 마디(Мады)라는 작은 마을에 은둔 생활을 하다가 그곳에서 사망하게 되었고, 아들이 묻힌 오시에 같이 묻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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