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표] 삼국유사에 기록된 한국사 연표 8 -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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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어원과 표로 보는 한국사, 한국문화

[연표] 삼국유사에 기록된 한국사 연표 8 -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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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한지가 어연 5~6년, 수능 공부를 하면서 재밌게 봤던 이 책엔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지 못했던 내용들, 교과서를 만들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내용들도 있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 '연도, 기록 (인용도서 이름)' 순으로 기재함
* '-xxx년'은 '기원전 xxx년'이라는 표기임
* 연도가 같은 두 개 이상의 사건 중 어느 것이 먼저 일어난 사건인지 모를 경우, 연호의 ㄱㄴㄷ 순서대로 기록 혹은 삼국사기, 고려사 등 타사서를 참고함

제10대 내해왕 즉위 17년 임진(212), 보라국, 고자국(고려의 고성). 사물국(고려의 사주) 등 8국이 힘을 합쳐 (신라의) 변경을 쳐들어왔다. (신라 내해)왕은 태자 날음과 장군 일벌 등에게 명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그들과 겨루도록 하니, 8국이 모두 항복했다. 이때 물계자의 군공이 제1이나, 태자의 미움을 받은 바, 그 공에 대한 상을 받지 못하였다. 어떤 이가 물계자에게 이르길, “이 전투의 공은 오직 당신 뿐이다. 그런데 상이 당신에게 미치지 못하고, 태자가 미워하는 것이 자네는 원망스럽지 않은가?” 하니, 물계자가 말하길, “임금이 위에 계시는데, 어찌 신하를 원망하겠는가.” 했다. 어떤 이는 말하길, “그렇다면 임금에게 아뢰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니, 물계자가 말하길, “공을 얻으려고 목숨을 다투고, 몸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을 가리는 것은 뜻있는 선비가 할 바가 아니니, 때를 기다릴 뿐이다.”

(신라 내해왕 2)0년 을미(215), 골포국(고려의 합포) 등 3국의 왕이 각각 병사를 거느리고 갈화(=굴불(현재의 울주)로 추정)를 공격해왔다. (내해)왕은 친히 병사를 거느리고 그것을 막자, 3국은 모두 패했다. 물계자가 머리를 밴 것이 수십 급이였으나, 사람들은 물계자의 공을 말하지 않았다. 물계자가 그의 부인에게 일러 말하길, “내가 듣기로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다하며, 어려움에 임해서는 나를 잊고, 절개와 의리에 기대어 생사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충성이다. 무릇 보라(발라(고려의 나주)로 추정), 갈화의 전쟁은 참으로 이 나라의 환란으로 임금이 위태로웠으나, 나는 일찍이 나를 잊고 목숨을 다하는 용기가 없었으니, 이는 충정이 깊지 못함이라. 이미 불충하여 임금을 섬겼으니, 선대에 폐를 끼친 것이고, 어찌 효라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충효를 잃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정과 저자에서 웃을 수 있겠는가!” 이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거문고를 메고, 사체산에 들어갔다. 대나무같은 성질이 병임을 슬퍼하며, 그것에 기대어 노래를 짓고, 시냇물 소리를 본떠 거문고를 뜯어 곡조를 지으며, 숨어서 살면서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신라) 법흥왕 정미(527), (신라 낭지가 영취산에) 처음 발을 들였다.

(신라) 문무왕 즉위 원년 신유(661), (신라) 지통이 (영취)산에 온 때이다. 계산하면 (낭지가 영취산에 온지) 이미 135년이다.

용삭 연간(661~663) 초, (신라) 사미 지통이 있어, 이량공의 집에 노비였다.

천보 7년 무자(신라 경덕왕대, 748), (신라) 직장 이준(=이순)의 나이 50세가 되니, 다시 조연소사를 고쳐 큰 절로 하고, 이름을 단속사라 했다. 그 자신도 또한 머리를 깎고, 법명을 공굉장로라 했다.

((천보 7년부터) 20년후), (신라 직장 이준이) 절(=단속사)에서 머무르다 죽었다. (별기)

경덕왕 22년 계묘(763), (신라) 신충은 두 벗과 서로 약속하여 벼슬에서 사퇴하고 남악에 들어갔고, (경덕왕이) 다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머리를 깍고 사문(=스님)이 되었다. 왕을 위해 단속사를 세워 살면서, 죽을 때까지 은거하길 원하였으며, 대왕이 복을 받기를 빌어, 왕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삼국사)

함통 4년(863), 헌안왕이 (그를) 두 왕대의 왕사로 삼아 조라고 호하고 죽었다. (승전)

태평흥국 7년 임오(982), (신라) 스님 성범이 처음 (포산(=소슬산)에 있던) 이 절에 와서 살다가, 만일미타도량을 열고, (이 해로부터) 50여 년을 정성을 다하니, 자주 상서로운 조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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