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천주교 순교자가 처형된 장대골 수영장대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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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천주교 순교자가 처형된 장대골 수영장대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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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 광안동 546-4에는 병인박해(1866~1871)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천주교 성지가 있습니다.

수영장대 순교 성지
수영 장대골군 지휘관이 병사들을 훈련시키던 골 안 연병장에 높은 대를 쌓아 놓은 장소였습니다.
여기에서는 병사들의 훈련뿐만 아니라, 중죄인들이 처형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해가 시작되자, 수영 장대골은 병인박해(1866~1871)로 인해 경상도 동래 지방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을 비롯하여 이월주(프란치스코), 박소사(마리아) 이관복(베드로), 차장득(프란치스코), 이삼근(야고보), 옥소사(발바라) 등 여덟 분이 체포되어 1868년 8일 4일(음) 군문 효수형으로 순교한 순교터가 되었습니다. 순교자들은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믿으며 "가세, 가세, 천탕으로 가세." 라고 노래하며 순교의 길을 가셨습니다. 순교자들의 시신은 명장동으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이정식(요한), 이월주(프란치스코), 박소사(마리아), 이관복(베드로)만 오륜대 순교자 기념관에 모셔져 있으며, 그 밖의 네 분의 무덤은 찾지 못하여 가묘를 세워 두었습니다. 수영 장대골에서 순교한 여덟 분 중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현재 이 장소는 광안성당에서 장대골 순교 성지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순교자들의 후손들인 우리가 순교자들을 기리며 순교 신앙을 현양하는 성스러운 장소에서 정숙하게 기도합시다.
천주교 부산교구

원래 이곳은 경상좌수영 장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장대에서는 조선 입장에서 중죄인을 처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병인박해 시기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그 중죄인에 해당되었었죠... 이후 이 지역은 장대가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장대골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치로 된 문이 성지방문객을 맞아줍니다.

수영 장대 순교 성지
수영은 경상도 좌수영이 있었던 곳이고, 특히 이곳에 장수가 높은 대에 올라서서 명령하고 지휘하던 장대(將臺)가 있었다.

가끔 장대 앞에서 중죄인을 처형하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신자 체포령이 내려졌을 때, 이정식의 가족들과 동래 교우들은 피신하였다. 그런데 1868년(무진년)에 포졸들의 적극적인 신자 색출로 인해 이정식의 가족들과 동료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이들에게 모진 고문과 형벌이 가해졌지만, "가세, 가세 천당으로 가세"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굳은 믿음으로 주님을 증거하였다. 이곳 장대에서 여덟분이 8월 4일(음)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정식 가족의 시신은 명장동으로 옮겨졌다가, 1977년 오륜대 순교자 성지 동산으로 이장하여 모시고 있다.

여덟분의 순교자 중 이정식(요한)과 양재현(마르티노) 순교자는 부산 교구에서 시복청원을 하여 2014년 8월 16일 복자품에 올랐다.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두 분의 시복을 기념하여 2014년 5월 24일부터 2015년 8월 16일까지 이곳을 전대사 순례성지로 지정하였다.
성지 참배 순서
1. 시작 성가
2. 한국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3. 십자가의 길
4. 부산교구 시복 감사기도
5. 가정성화를 위한 주모경
6. 마침 성가

입구 계단을 올라와 왼쪽을 보면 예수님의 고난을 묘사한 것 같은 8번째 조각상이 서있습니다.

잔디 옆 동그란 돌이 박힌 길을 따라 십자가를 향해 갈 수 있죠. 천주교에선 '야외제대 및 대형십가고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오른편엔 성모 마리아가 서 계십니다(성모상). 이곳에서 기도를 할 수 있죠.

입구 왼쪽 편엔 작은 탁자가 놓여 있네요. 그 옆으로 9번째 석상을 시작으로 비석이 놓아져 있습니다.

비석 앞면 비석 뒷면
수영장대 여덟 순교자 기림비 가세가세 천당으로 가세
1868(무진)년 음력 8월 19일
여기 수영장대 언덕 이 자리
모진 매, 생살 타는 내음, 마을을 덮던
잔혹한 불찌검에도 굳굳히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자국 자국 밟으며
마침내 그 여덟 머리는 높다란 장대끝에 달였어도
더욱 크게 되풀이 메아리치던 그 날의 님 노래
우리 귀에 쟁쟁
눈에 보이네
    영화롭도다 이 길이 영화롭도다
그 날로부터 1백20년이 간
1988년 9월 30일
여기 수영장대 그 언덕 이 자리
장하여라
참 믿음의 거울이시요
참 희망의 증거이시요
참 사랑의 본 본이시요
참 용기의 잣대이시요
참 희생의 으뜸이시요
참 전교의 스승이시요
참 용서의 승리이시요
참 평화의 잡이이신
그 이름
  이정식(李廷植) 요한      이관복(李寬福) 프란치스꼬
  박소사(朴召史) 마리아  이삼근(李三根) 베드로
  양재현(梁在鉉) 말띠노  차장득(車長得) 프란치스꼬
  이월주(李月株) 야고보  옥소사(玉召史) 발바라

여덟 분 순교자시여
성인되소서
   하늘에 하느님 영광
   땅에 인류 평화

서기 1988.9.30.

조유로 짓고
김봉근 쓰고
조일상 만들고
부산교구 꾸르실료 제44차 동기회 일동은 봉헌하고
천주교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세우다

비석 옆에는 위패 모양의 순교복자 및 순교자의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왼편에는 부산교구 시복 감사 기도문에 세워져 있습니다.

부산교구 시복 감사 기도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저희 부산교구에
복자 이 요한과 양 마르티노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놀라운 섭리로
이 땅에 복음을 알리시어
주님을 증거하고 섬기게 하셨나이다.

순교자들의 뜨거운 신앙을 이어받은
저희가 시대의 징표로 올바로 깨달아
오늘날에도 새롭게 다가오는 박해에
굴하지 않게 하소서.

저희도 순교자들의 신앙과 열정을
본받아 자신과 사회의 복음화에
힘쓰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소드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순교자들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주모경

(2014.5.14. 부산교구장 승인)

8분의 묘비는 뒤쪽 6개의 순교자묘, 앞쪽 2개의 순교복자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순교자
차장득
(프란치스코)
순교자
이삼근
(야고보)
순교자
옥소사
(발바라)
순교자
이관복
(베드로)
순교자
박소사
(마리아)
순교자
이월주
(프란치스코)

1988년에 세워진 '수영장대 여덟 순교자 기림비'에서는 이관복 프란치스코, 이삼근 베드로, 이월주 야고보라고 쓰여 있는데, 최근에 지어진 안내문과 설명서 등에는 '이관복 베드로, 이삼근 야고보, 이월주 프란치스코'라고 쓰여 있으므로, 그들의 세례명은 비문에 적힌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순교복자
양재현
(마르티노)
순교복자
이정식
(요한)

여덟 분 중 양재현 마르티노와 이정식 요한은 복자(福者)가 되었습니다. '복자'는 특정 지역에서 공경할 수 있다고 교황청에 의해 지정된 인물로, 성인 이전 단계로 공인된 인물입니다. 

성지의 가운데에는 야외제대와 대형십가고상이 있습니다.

1868년 8명의 천주교 순교자들이 처형당했을 때 당시에 이곳 경상좌수영 장대에 있었던 여러 돌 중 하나로,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에서 이렇게 보관되고 있습니다.

장대돌
1868년 이곳 성지에서 순교자
여덟 분이 군문 효수형에
처형되었을 때 있었던 장대돌이다.

가장 오른쪽엔 성모상이 있습니다. 위험하니 기도하면서 성모상에 매달리지 말라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장소입니다. 성지화가 된 만큼 이후 이곳을 파해쳐 조사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곳은 역사적으로는 동래(현 부산) 지역 군사 건축과 관련된 유적지이면서 기존 질서와 새로운 흐름이 마주쳤을 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치가 있으며, 종교적으로는 천주교의 한반도 전파에 힘쓴 조선인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사랑이 담긴 곳으로써의 가치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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