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남2교를 건너 양산 주남동의 우불산 기슭에 위치한 양산삼호리고분군으로 가는 길에 비석 두 기 세워져 있습니다.
[양산] 주남천 하류를 지나가며 우불산과 주남마을을 잇는 주남2교
양산 천성산에서 발원해서 회야강으로 들어가는 주남천(周南川) 하류.이곳에는 주남천을 건너는 마지막 다리인 주남2교가 세워져 있습니다.2019년부터 개통된 이 다리는 우불산 남부 지역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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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포창증과 기념석이죠.

| “할매요, 지난번에 쌀 가져간 거 다 묵었을 낀데…. 쌀 있능교?” 동네를 돌고 있던 정상모 씨는 길 건너집 할머니를 만나자 쌀독 안부부터 묻는다. 할머니는 ‘고마워,너무 고마워’ 하며 정상모 씨 손을 잡는다. 오늘 저녁 할머니는 또 한 포대의 쌀을 받아 손주와 찰진 햇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60년 전 정상모 씨 역시 밥을 굶기가 일쑤였다. 나물죽과 나무껍질 벗겨 먹는 게 일상이었던 시절, 곡기가 그리워 아버지 점심으로 둔 밥을 몰래 훔쳐 먹다 어머니에게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야속하고 서러웠던 어린 시절의 풍경이다. 어릴 적 정상모 씨에게는 밥이 금이었고,쌀밥을 된장국에 말아 배터지도록 먹어보는 게 일생 소원이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운전사 조수로 일하면서 그는 돈만 벌면 논을 사들였다. 그 논에서 그의 허기를 달래줄 쌀이 나오기에, 돈이 모이면 논을 사러 들로 달려갔던 것이다. 쌀을 목숨처럼 여긴 정상모 씨에게 서서히 인생의 반전이 일어났다. 당시는 논값은 거름값이고, 쌀값은 금값이던 세상이었는데,세월이 흐르면서 논값은 금값이고 쌀값은 거름값이 되는 희한 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틈틈이 사놓은 논 덕분에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된 정상모 씨,그러나 그는 홀로 넉넉한 삶을 살고자 하지 않았다. 72년부터 논에서 수확한 쌀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쌀이 집에 있어야 일단 든든하잖아요. 밥 먹고 배가 든든해야 뭐든 할 의욕이 나는 겁니다.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쌀 떨어지면 큰일나죠.” 40여년 전부터 쌀을 나눠주는 일을 계속해온 것은 이런 그의 철학 때문이었다. 밥 한끼를 제대로 먹는 게 소원이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남의 집 끼니에 대한 정씨의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없었다. 그래서 그는 1991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복지 시설 등에 쌀과 성금을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려 3억 원의 쌀을 기부했으니 그가 준 쌀로 도움을 받은 이웃의 수는 상당하다. 공식적인 기부 외에도 정상모 씨의 쌀 창고는 늘 열려 있다. 손수레로 쌀을 조심스럽게 실어내 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더 못 주어서 안달이다. 양산에서 ‘정상모를 모르면 간첩’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쌀천사’ 로 유명해진 그다. 그의 나눔은 물질적인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있는 마을에 위치한 서창초등학교 앞에 서는 유난히 어린이 교통사고가 잦았다. 불행한 사고를 그저 남의 일 구경하듯 둘 수 없어,그는 1983년부터 15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둥하교 길의 교통 지킴이가 되어 주고있다. 마을 아이들을 내 자식,내 손주라 생각하고 지켜준 정상모 씨의 정성…. 그는 배고픈 이들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도 든든한 파수꾼이다. 정상모 씨는 한때 건강 악화로 생사의 고비를 4번이나 넘어야 했다. 그의 건강을 우려한 주변 사람들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그만두라 만류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신이 불우이웃을 더 많이 도우라고 죽을 목숨 살려주셨는데 더 열심히 해야지.”라며 더 많은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고,더 많은 이들의 진자리 마른자리를 살피러 다니고 있다. 한결같이 시장에서 산 값싼 셔츠와 바지를 입고 다니는 정상모 씨는 오늘도 낡은 구두의 흙을 털어내며 대문을 나와 중얼거린다. “어디 쌀 떨어져가는 집 없나? 아이고 날씨도 추워지는데.. 〇 〇 할배집에 한 번 가 봐야겠구먼…” 만년 농사꾼 정상모 씨 곁에서 선한 냄새가 바람 끝에 묻어온다. -국민추천포상 명예의전당 |
정상모 선생님은 힘든 환경 속에서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부산에서 운전수 조수로 시작하면서 논을 사두었으며, 1983년부터 1998년까지 15년간 서창초등학교 앞에서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을 실천했고, 해병대 전우회 고문 활동도 했으며, 1991년부터 지금까지도 매년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소년소녀가장, 복지시설, 학교 등에 쌀과 성금을 전달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한 양산의 기부천사가 되었습니다. 그 공로로 그는 2004년에 자랑스러운 시민상, 2010년에 양산시민대상, 2011년에 드디어 국민포장을 수상하게 되었죠. 그 포장증이 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양산 웅상의 기부천사 정상모 선생의 사랑과 업적은 돌에 새겨져 만대에 기억될 것입니다.
[양산] 웅상 지역의 역사와 웅상의 비상을 기원하는 웅비탑(웅상의비상탑)
17-18세기부터 공식적으로 지금의 양산시 웅상출장소 관할 지역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지역을 '웅촌(곰마을, 熊村)'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웅촌(熊村)은 전통적으로 진산(鎭山, 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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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이웃 사랑에 대해 깊이 감사함을 느끼고 세상에 선생님같은 분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국민포장 제15523호 |
| 포장증 |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 |
| 정상모 |
| 귀하는 헌신적 봉사와 나눔을 통하여 국가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므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다음 포장을 수여합니다. |
| 국민포장 |
| 2011년 7월 15일 |
| 대통령 이명박 |
| 이 증을 국민포장부에 기재합니다.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 |

| 사람이라면 남에게 도움을 못줄망정 피해를 주지말자 |
| 국민포장 수상 정상모 |
| 2011.07.15. |
| 해병대 병112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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