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20일, 도시 400주년을 기념해서 러시아 톰스크주 내 톰 강변에 조각가 레온틴 안드레예비치 우소프(Леонтий Андре́евич Усов, 1948~)가 조각한 2m에 달하는 청동상 하나가 세워집니다.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벚꽃동산>,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등으로 유명한 러시아 제국의 의사이자 소설가 겸 극작가로 유명한 안톤 체호프입니다.
얼핏 보면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톰스크와 안톤 체호프는 사실 아주 징하게 얽혀 있는 관계라 볼 수 있죠~
엉성한 외투와 이상하게 기운 모자, 뒤틀린 안경, 보이지 않는 눈, 짝다리를 짚고 있는 맨발, 그리고 제대로 집지 않고 팔 사이에 걸친 우산...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모습의 동상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카슈탄카(Каштанка)>를 읽지 않고 도랑에 누워있는 술취한 남자의 눈들로 (본) 톰스크에서 안톤 파블로비치(Антон Павлович)
이 동상이 우스꽝스러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모습은 실제 그의 모습이 아닌 안톤 체호프의 책 <카슈탄카> 조차 읽지 않고, 톰스크에서 술 취한 한 남자의 눈들로 보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죠.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톰스크가 체호프에게 복수했다'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과연 무슨 일이 있던 걸까요?
톰스크는 한 품도 가치가 없다... 가장 지루한 도시고..., 이곳 사람들도 엄청 지루하다... 도시는 (술)취했고..., 진창이 헤어날 수 없다... 여관에서 주인이 내게 숟가락을 주면서, 그걸 등허리에 닦았다... 여기에서 점심은 우수했다, 터치하기 힘든 여성들과 다르게...
- 안톤 체호프
1890년, 안톤 체호프는 시베리아를 건너 사할린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 톰스크를 잠시 방문했는데, 그는 이 도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실제로 그는 톰스크 진창 속에서 신발을 잃어버렸고, 슬라뱐스키 바자르(Славянский базар)라 불리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 그의 기분은 정말 언짢았을 겁니다...
이 동상 주변에서 매년 '체호프의 금요일들(Чеховские пятницы)'이란 문화행사가 개최되어 많은 음악이 연주되고, 다양한 영화 작품을 상영됩니다. 미니-아르바트(мини-Арбат,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문화의 거리) 같은 문학가 안톤 체호프의 글로 시작된 악연(?)을 시작으로 이곳이 문화의 새로운 고장이 되길 바라는 축제죠.
그 외에도, 안톤 체호프 동상의 코를 만지면 시험을 잘 본다와 같은 속설도 있어 많은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그의 코를 만져 번들번들해졌다는 후소문도 있습니다~~~ 톰스크로 가 톰 강변을 거닐다 우스꽝스럽게 생긴 동상을 보면 술꾼의 눈으로 본 진창 속의 안톤 체호프의 동상이란걸 알아차리면 또 흥미로운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어원과 표로 보는 역사 시리즈 > 어원과 표로 보는 세계사, 세계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614, 푸틴 "유라시아에 신안보체계 만들자" (0) | 2024.06.14 |
---|---|
18~20세기 일부 러시아 시인 전체 타임라인을 만들어봤습니다~ (0) | 2024.06.14 |
가슴십자가를 버리지 않고 순국한 적국에서도 존경받던 예브게니 로디오노프 (0) | 2024.05.31 |
키르기스스탄의 인물 정리 (0) | 2024.04.21 |
노래 <아름답고 먼, 내게 잔혹하지 말기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0) | 202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