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성씨록에 기록된 임나 출신 일본인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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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에 기록된 임나 출신 일본인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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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은 일본 헤이안 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당대 헤이안쿄와 그 근교에 살던 고대 씨족들을 일부 기록한 명감(名鑑 : 인명록)이다. 이 책의 <제3질(帙)/제번,미정잡성>편을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 등 한반도출신 도래인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그 중 가장 적게 수록된 임나(=가야) 출신의 성씨들을 살펴보자.

먼저 이 책에 관한 사전 지식을 알고 가자.

1. 본관(本貫) : 고대 동아시아에서 호적의 편성(관적)이 이루어진 토지

2. 종별(種別) : 종류에 따라 나뉜 구별

3. 씨족(氏族) : 공통의 조상을 가진 혹은 갖는다는 의식(혹은 신앙)에 의한 유대감으로 결속된 혈연집단

4. 카바네(姓, 성) : 고대 일본 야마토 왕권의 오오기미(대왕)로부터 유력한 가문에게 부여된 왕권과의 관계와 지위를 나타내는 칭호

5. 동조관계(同祖関係) :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관계

6. 기사(記事) : 기록된 사실

7. 비고(備考) : 참고사항

8. 엽(頁) : 책과 신문 등 인쇄물의 구성 요소 단위(=페이지)

여기서 카바네(姓)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그 유래와 특징을 살펴보자.

1. 그루터기를 뜻하는 株根[카부네], 그루터기의 이름을 뜻하는 株名[카부나]에서 유래해 핏줄과 혈통을 의미하는 단어로 바뀜

2. 고귀한 이름을 뜻하는 崇名[아가메나]에서 유래

일본 야마토 왕권이 성숙하면서 대왕가(황실)를 중심으로 유력씨족의 직장과 입장이 점차 확정되는 가운데 각 유력자의 직장과 지위를 명시하기 위해 부여된 것을 카바네의 시작으로 본다.

카바네는 힘있는 호족에 의해 세습되는 칭호인데, 작위로서의 성격과 직장(업장, 직업)이 수반되는 관직으로서의 성격의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여겨지며, 대 야마토 왕권의 통치 형태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요약하자면 카바네(성)는 작위 혹은 관직명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그럼 이제 아래 신찬성씨록에 기록된 임나 출신 성씨를 살펴보자.

(번호) 809 810 811 935 960 961 988 989 990
본관 左京 左京 左京 山城国 大和国 大和国 摂津国 摂津国 摂津国
종별 諸蕃 諸蕃 諸蕃 諸蕃 諸蕃 諸蕃 諸蕃 諸蕃 諸蕃
세분 任那 任那 任那 任那 任那 任那 任那 任那 任那
씨족명 道田連 大市首 清水首 多多良公 辟田首 大伴造 豊津造 韓人 荒荒公
동조관계
시조 任那国賀羅賀室王 任那国人都怒賀阿羅 任那国人都怒何阿羅志 御間名国主尓利久牟王 任那国主都奴加阿羅志等 任那国主龍主王孫佐利王 任那国人左李金[亦名佐利己牟] 左李金[亦名佐利己牟]之後 任那国豊貴王之後
기사 天国排開広庭天皇[謚欽明。]御世。
投化。
献金多々利金乎居等。
天皇誉之。
賜多々良公姓也
비고
290 291 291 311 315 315 320 320 320

본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겠다. 임나 출신의 일본 성씨의 본관은 左京[사쿄], 山城国[야마시로노쿠니], 大和国[야마토노쿠니], 摂津国[셋쓰노쿠니] 이렇게 4개이다. 이 지명의 위치를 보고 유래를 알아보자.

일본 헤이안 성의 사쿄 지역.

 

일본 고대 율령국인 셋쓰국,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左京[좌경]은 조방제(条坊制)로 지어진 도시 내부를 가로지르는 주작대로(朱雀大路)의 동쪽 부분을 말한다. 윗 왼쪽 사진의 헤이안 성 기준으로 빨간색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이 지역은 현재 일본국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에 해당한다. 이 지역에 道田連[도전련]. 大市首[대시수] 清水首[청수수] 씨족이 살았다.

야마시로국에는 多多良公[다다량공] 씨족이 살았고, 야마토국에는 辟田首[벽전수], 大伴造[대반조] 씨족이 살았으며, 셋쓰노국에는 豊津造[풍진조], 韓人[한인], 荒荒公[황황공]씨족이 살았다.

이제 9씨족의 명칭과 그에 관한 기록을 알아보자.

1. 道田連 [미치타노무라지]

左京[사쿄]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任那国)의 하라하실왕(賀羅賀室王)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카바네)는 連이다.

* 사쿄 미치타노무라지(左京 道田連)를 후예로 두고 있는 賀羅賀室王 [카라카라오우/카라카라와우]는 가야의 마지막 군주 가실왕(賀室王, 嘉悉王)을 말한다.

2. 大市首 [오치노오비토]

左京[사쿄]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인(任那国人) 도로하아사라지(都怒賀阿羅斯止)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首이다.

* 오치노오비토의 시조인 都怒賀阿羅斯止와 시미즈노오비토의 시조인 都怒何阿羅志止, 히라토노오비토의 시조인 都奴加阿羅志等는 모두 같은 인물로 본다. 이들의 이름은 <일본서기>에 도노아아라사등(都怒我阿羅斯等)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일본어 발음은 [츠메가아라시토]이다.

그러나 都怒賀阿羅斯止와 都怒何阿羅志止는 그를 임나국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都奴加阿羅志等는 임나국의 국주라고 기록했다. 임나국주는 임나사람이지만, 임나사람 모두가 임나국주는 아니기 때문에, 이 3명이 과연 동일인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3. 清水首 [시미즈노오비토]

左京[사쿄]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인(任那国人) 도로하아라지지(都怒何阿羅志)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首이다.

4. 多多良公 [다타라노키미]

山城国[야마시로노쿠니]를 본관으로 하며, 어간명(御間名)의 국주(国主) 이리구모왕(尓利久牟王)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公이다.

임나 출신 씨족 중에 유일하게 기록이 존재한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天国排開広庭天皇[謚欽明。]御世。投化。献金多々利金乎居等。天皇誉之。賜多々良公姓也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天国排開広庭天皇)[시호는 긴메이(欽明)]가 천하를 다스렸다. (스스로) 투화(投化 : 투항해서 왜에 귀화함)하여 금다다리(金多多利), 금호거(金乎居) 등(等)을 드렸다。천황(天皇)이 칭찬하며 다다량공(多多良公) 성(姓)을 주었다.

5. 辟田首 [히라토노오비토]

大和国[야마토노쿠니]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주(任那国主) 도노가아라사등(都奴加阿羅志等)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首이다.

6. 大伴造 [오토모노미야츠코]

大和国[야마토노쿠니]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주(任那国主) 용주왕(龍主王) 손(孫) 좌리왕(佐利王)의 후예를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造이다.

7. 豊津造 [도요츠노미야츠코]

摂津国[셋쓰노쿠니]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인(任那国人) 좌리금(左李金[혹은 좌리기모(佐利己牟)](의 후예)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造이다.

* 左李金 혹은 佐利己牟의 후예는 도요츠노미야츠코의 시조이자 가라히토의 시조이다. 이 둘은 한자와 설명이 모두 같기에 충분히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추가로 左李金(혹 佐利己牟)가 佐利王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발음은 똑같은 것을 근거로, 오토모노미야츠코도 左李金(혹 佐利己牟)의 후예로 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무작정 확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도요츠미야츠코와 가라히토의 시조는 같으며, 오토모노미야츠코의 시조와의 연관성도 존재한다라고 결론 내리겠다.

8. 韓人 [가라히토]

摂津国[셋쓰노쿠니]를 본관으로 하며, 좌리금(左李金[혹은 좌리기모(佐利己牟)])의 후손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9. 荒荒公 [아라라노키미]

摂津国[셋쓰노쿠니]를 본관으로 하며, 임나국(任那国) 풍귀왕(豊貴王)의 후손을 시조로 하는 씨족이다. 이들의 성은 公이다.

씨족의 시조들의 출신 국가로는 任那国와 御間名国가 있다. 임나(任那)와 어간명(御間名)의 현대 한자 발음은 모두 다르지만, 고대 일본어로 두 단어 모두 [미마나]라고 읽었기에, 두 나라는 결국 같은 나라임을 알 수 있다. 계속 임나국이야기만 하다가 갑자기 어간명국이라는 단어가 나와 그 정체에 대해 혼동할 염려가 있어 기록한다.

지금껏 읽어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신찬성씨록에 기록된 임나 출신 성씨

이번 글에선 '가야 또한 일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삼국시대에 별볼일 없다고 여겨지던 작은 국가들의 모임인 가야가 9세기 당대 일본의 중심지에서 그들에게 선진문화를 전하며 같이 화합하며 살아가는 길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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