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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경주 동궁과 월지, 신라 궁궐의 정원을 걷다

호기심꾸러기 2025. 10. 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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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시간은 9시부터 21시 30분까지이며, 22시가 될 때까지 모든 인원이 나와야 합니다. 명절 연휴에 한복 착용자(상하의 모두 착용)는 무료 입장이라고 하네요~

800원 어린이(단체)
1000원 어린이(개인)
1600원 청소년(단체), 군인(단체)
2000원 청소년(개인), 군인(개인)
2400원 어른(단체)
3000원 어른(개인)

단체의 경우 20인 이상이 동시에 관림하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연령대별 혼합 관람은 20인이 넘더라도 단체할인가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표 검사를 한 다음 바로 왼편에는 동궁장터라는 기념품샵이, 오른쪽에는 동궁과 월지 영상관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곳을 동궁과 월지라고 부릅니다. '동쪽의 궁궐'이란 뜻의 동궁은 왕자가 사는 궁궐이란 뜻이고, 월지(月池)는 '반월성 주변의 못(호수)'라는 뜻입니다.

1975년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물의 구조와 규모를 고증하여 1980년에 팔작지붕의 누각으로 복원된 정면 3칸, 측면 3칸, 높이 9m 규모의 1호 복원 건물입니다. 이 월지의 서편 호수 기슭에 건물터로 추정되는 돌 축대 5곳이 확인되었는데요. 그 중 가장 남쪽에 위치했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조선 초기부터 최근까지도 기러기(雁)와 오리(鴨)가 있는 못(池)이란 뜻의 안압지(雁鴨池)라고 불렸던 월지(月池)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호수는 신라의 태자가 살던 동궁(東宮) 혹은 임해전(臨海殿)에 있는 인공 호수이죠. 이 물은 동궁과 월지의 동북쪽의 북천에서 끌어옵니다.

신라 시대에 건물터를 따라 연결되게 만들어진 석조 유구 배수로(ditch)의 흔적도 볼 수 있습니다. 건물의 지붕에서 떨어진 빗물의 배수로로 보이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어 연못에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이런 석조 유구는 총 83m라고 하네요.

1980년에 팔작지붕의 누각으로 복원된 정면 5칸, 측면 4칸, 높이 10m 규모의 3호 복원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보는 월지의 풍경도 이쁘네요.

이 3호 복원 건물 안에는 동궁과 월지의 모습은 50분의 1로 축소하여 추정 제작한 동궁과 월지의 모형이 있습니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의 학술발굴조사에서 궁전의 건물, 회랑, 원지(苑池) 등의 유적을 확인하여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연못에 인접한 건물 3동을 추정복원하고 유적지를 정비했습니다.

그 3동을 포함한 건물 13동, 회랑 156칸, 원지 등으로 구성된 모형을 전시하고 있죠. 축소 모형이지만 정말 운치있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궁궐입니다.

사모지붕 누각으로 1980년에 복원된 정면 3칸, 측면 3칸, 높이 9m 규모의 5호 복원건물입니다. 이렇게 총 3개의 건물이 2025년 10월 기준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이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봅니다.

멋진 기암괴석과 시원해 보이는 물에서 노니는 잉어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깃든 월지입니다.

그렇게 산책을 하다보면

화강석으로 만든 길이 2.5m에 너비 6m 규모의 수조 유구가 나옵니다. 40cm 높이의 차이를 두고 2개가 연결된 형태로, 반원형으로 안쪽으로 깎아 내어 물을 고이게 하였고, 가장자리에는 용 모양을 조각한 흔적이 있습니다. 수조 좌우에는 큰 널돌을 놓고 벽석(壁石, 널빤지처럼 다듬어 갈아서 벽을 꾸미는 돌)을 세워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흐르는 물이 모여 폭포를 이루고 이 물이 연못으로 흐르도록 지어졌죠. 한마디로 월지의 급수터입니다.

산책로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신라인들의 정교한 건축과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동궁과 월지의 풍경은 그 자체로 신라의 찬란했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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