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틈새로 흐르는 진실을 듣다: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1.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정신분석학의 라캉 학파(Lacan School) 학자 애니 G. 로저스(Annie G. Rogers)는 내러티브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의 언어 교환에 존재하는 독특한 형태이자 말하기의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존재인 '말할 수 없는 것(the unsayable)'에 주목하며 이 논문을 씁니다. 그렇게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와 그 인터뷰(interviewing) 관행을 검토하고, 내러티브 심리학의 중심이 되는 '자아(self)'가 환상의 장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주관성을 탐구하기 위해서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인터뷰 기술이 언어, 자아, 주관성의 개념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여주죠.
Crossref
Choose from multiple link options via Crossref
chooser.crossref.org
1-1. 내러티브 심리학과 인터뷰: 역사, 개념, 모순
내러티브 탐구는 심리학에서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실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죠. 일찍이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901)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 마음의 다양성'을 이해하고자 했으며, 이는 내러티브 연구의 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초기 심리학의 거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로이트(Freud)의 임상 사례 연구부터 에릭슨(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피아제(Piaget)의 아동 연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내러티브 탐구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Breuer & Freud, 1885/1955), (Erikson, 1958, 1963), (Erikson, 1958, 1963))
이후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는 개인의 삶 그 자체에 집중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헨리 머레이(Henry Murray)와 로버트 화이트(Robert White)는 '성격학(personology)'을 통해 개인의 심리를 파고들었고, 고든 올포트(Gordon Allport)는 개인 문서와 개별기술적(idiographic) 방법을 연구에 도입했습니다. 또한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나 셰리프(Sherif) 등도 질적 방법과 내러티브를 통해 집단 과정을 연구하며 방법론을 확장시켰습니다.(Henry Murray (1938), Robert White(1952), Gordon Allport(1937), Kurt Lewin(1948), Sherif, Harvey, White, Hood, & Sherif(1961))
시간이 흐른 1970-1980년대에 심리학은 개인의 삶, 사회 구조, 심리전기(psychobiography), 집단역사(group history) 상의 내러티브 연구(narrative research)에 도전과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특히 1986년에 아래 소개할 두 명의 학자가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 제롬 브루너 (Jerome Bruner, 1915-2016) |
내러티브가 자아와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주장 내러티브 연구를 정당화(기존 통계 및 실험 중심 심리학에 인식론적 도전 제기) |
| 엘리엇 미슐러 (Elliot Mishler, 1924-2018) |
인터뷰를 단순한 '질문-답변(자극-반응)'이 아닌, 사회적 맥락 속에서 연구자와 참여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담화(Discourse)'로 재정의 |
하지만 여기서 '누가 '자아'에 대한 해석의 권위를 가지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연구자가 참여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학문적 해석을 덧붙이는 과정에서 모순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 자아 관점 | 인터뷰 해석 | |
| 현상학적 접근 | 통합적이고 합리적인 화자(narrator)를 가정 | 참여자의 생생한 경험을 투명하게 보여줌 -> 사실과 개인적 의미에 집중 |
| 사회구성주의적 접근 | 자아=사회적 창조물 (화자는 사회적 맥락과 분리 불가) |
외부(사회적 상황)과 내무(개인적 경험) 사이의 관계 해석 -> 상황에 따라 변하는 정체성과 다중적 진실 탐구 |
| 탈구조주의/언어적 접근 | 고정된 정체성 X 주체는 담론을 통해 생성 |
말하는 내용은 다층적이고 모호한 의미를 가짐 -> 단일한 의미 확정 불가 -> 연구자의 이론적 해석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 |
그렇게 논문은 '심리학자들이 '자아'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인터뷰 해석이 달라진다'라고 설명하며 3가지 접근법을 제시합니다.
| 아버지는 얼마나 자주 보세요? 음, 보통 크리스마스 즈음에 보고요,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비종(Vicion)]이라는 곳이 있어요. 어… 매년 여름마다 거기에 가요. 아버지가 프랑스에 사세요? 아니요, 뉴욕에 사세요. 하지만 거기서 태어나셨고, 거기에 친척들도 좀 있어요. 프랑스어 하세요? 조금요. 아주 조금요. 아버지랑 프랑스어로 대화하세요? 가끔요, 이따금씩요. 그럼 어머니랑은요? 어머니랑은 많이 안 써요. 그래도 가끔 프랑스어로 말하긴 해요. 어머니는 미국 분이세요, 아니면 프랑스에서 태어나셨나요? 음, 사실은 아니에요. 하와이에서 태어나셨어요. 정말요? 우리는 여기저기서 왔어요. 제가 일본계라는 거 알고 계세요? 그래요? 네, 아주 조금요. 정말 아주 조금이지만요. 그걸 알았을 때 꽤 놀랐어요. 언제 알게 됐어요? 음, 한 2년 전인지 3년 전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일본에 아직 친척이 있나요? 아니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요, 음, 우리 중에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어쩌다보니… 우리가 일본계인 거죠. 아마 거기서 잠깐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본에서 살았던 게 기억나요. 어릴 때 일본에서의 기억도 몇 가지 떠올라요. 어렸을 때요. 네. 아주 오래전 일도 많이 기억하는 것 같네요. 음, 네, 저는 많은 걸 기억해요. 심지어 제 슈퍼… 소크… 어… 슈퍼소커(supersoaker)도 기억나요. 슈퍼소커가 뭐예요? 물총이에요. 아. 그럼 그걸 아주 오래전에 가지고 있었던 거네요? 네, 그런데 뉴턴(Newton)에 살고 있을 때 어쩌다보니 잃어버렸어요. 형(or 동생)이 숨겼는데, 그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찾았어요. 그럼 지금 보스턴에서 사는 건 어때요? 음, 그러니까 한… 5년쯤… 아니, 아… 4년 반 정도 여기서 살았고요, 매일매일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어요.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
그러면서 논문은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9살 백인 소년 샘(Sam)과의 인터뷰의 일부를 인용하며 이 접근법을 분석하죠.
| 인터뷰 해석 | |
| 현상학적 접근 | '샘'은 '그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전달하는 '투명한 보고자' |
| 사회구성주의적 접근 | '샘'의 인생에 관한 다른 관계성들에 대한 질문을 던져 '샘'의 잘못된 대답을 찾게 스스로 도움 연구자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개인적/사회적 맥락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음 |
| 탈구조주의/언어적 접근 | '샘'의 목소리는 변화하는 사회적 담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인지 -> 단일한 진실보다 '다중적이고 다의적 의미'를 지님을 파악 |
물론 이 세 가지 접근법 모두 한계가 있는데요. 논문은 내러티브 속에 존재하지만 말로 표현되지 않고, 문장과 단어 사이로 빠져나가는 '말할 수 없는 것(the unsayable)'의 존재를 감지합니다.
1-2. 라캉주의적 심리분석, 주체 및 자아의 환상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4)은 뛰어난 정신분석가였지만, 정신분석가들을 포함해 미국 내에서 그의 연구를 이해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그는 미국보다는 유럽, 캐나다, 그리고 남미에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부분적으로 이는 그가 프랑스의 철학적·문화적 전통, 초현실주의 예술,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을 이론의 배경으로 끌어오면서, 독자들 또한 이 모든 개념에 이미 친숙한 것처럼 전제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둘째, 라캉은 그의 연구에서 '프로이트로의 회귀(return to Freud)'를 시도하는데, 자아심리학(ego psychology), 대상 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혹은 관계적 정신분석학 훈련을 받은 대부분의 (미국) 정신분석가들은 이를 기이하고 구식인 것으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구두 발표를 바탕으로 한) 라캉의 세미나들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데(play with language), 수많은 인용과 말장난들(puns), 단어의 공명(=뉘앙스)을 포함하고 있어 프랑스어로 접할 때 그 진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번역본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은밀하게(surreptitiously) 구해야 했기에, 라캉의 사상에 접근하는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논문은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미국보다 비미국권에서 더욱 유명하다는 것을, 난해한 배경지식의 사용, 프로이트로의 회귀, 언어 유희라는 세 가지 특성을 들어 설명한 뒤, '자아'와 '주체'에 대해 정리합니다.
| 라캉적 주체 (lacanian subject) (탈근대주의적 관점) |
['말하는 존재'로서의 주체(subject)의 출현 과정] - 언어가 주체를 형성하기에 말하는 존재로서의 주체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없게 됨 1) 우리는 언어 속에서 태어남(탄생 전부터 표식(가문명(=성), 이름 등)이 찍힘) 2) 말을 떼기 전부터 언어에 흠뻑 젖어듬(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특정한 언어로 대화 시도) 3)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통일된 자아(unified self)'라는 환상 형성(=거울 단계) |
| 데카르트적 자아 (cartesian self) (전통적 관점) |
'자아'는 일관되고 합리적이며 자기성찰적인 존재(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즉, 언어는 이미 존재하는 나의 생각이나 자아를 표현하는 도구 |
'자아'와 '주체'에 대한 두가지 관점을 정리하며, 논문은 '자아와 주체의 차이'는 '언어는 자아를 묘사하고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인가? 아니면 자아는 오직 언어 안에서, 언어로부터 특정한 형태를 취함으로써만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달려있다고 정리합니다.
라캉(Lacan)을 논하는 세이어(Sayer)(2004)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주체(subject)가 언어 내에서 구성된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언어 이전이나 외부에 존재하고 언어가 표현의 수단으로서만 기능하는 그런 본질적인 인간 주체(human subject)라는 어떤 개념도 거부하는 것이다."(67쪽)
그 함의는 혁명적이다. 언어의 밖에서는 그 자아(self)를 묘사하거나 지칭하는 방법이 없다. 그는 이 수수께끼 같은 진술을 계속해서 설명한다. "그 주체는 오직 언어 속에서 '자신을 잃기(losing oneself)'라는 이 객체화(objectification)의 활동에서만 창조된다. 우리는 (이것이) 근본적 상실(orignial loss) 속에서 발견된다/설립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68쪽)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세이어는 당연히 독자가 자신이 언급한 개념을 이해할 것이라고 <알려지지 않은 것(이니) 고로 생각한다: 언어, 기억, 그리고 주체(Incognito Ergo Sum: Language, Memory, and the Subject. 2004)>라는 그의 논문에서 '주체와 자아'에 대해 정리합니다. 이 '데카르트적 자아'와 '탈근대주의적 주체'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구조주의 언어학과 이 언어학을 재해석한 라캉의 이론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소쉬르는 '네 발이 달린, 짖는, 털이 난 동물(기의)'을 프랑스어로는 chien [셔], 영어로는 dog으로 표현(기표)된다고 예시를 들며,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는 어떤 언어에서든 '기호를 통해 이루어지는 서로에 대한 관계 구조'를 통해 임의로 연결되어 그 둘의 짝인 기호(sign)를 문법(grammar)을 통해 이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논문은 통합된 자의식적 실체로서의 데카르트적 자아(Cartesian self)를 방해하지 않으며 이 자아는 언어의 주인으로 남아 있다고 보죠.

그러나 라캉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버립니다. 라캉은 기표가 기의보다 우선하며 기표와 기의 사이의 선은 보완관계가 아니라 둘을 가로막고 분리시킨다고 분석했습니다.
'네 발이 달린, 짖는, 털이 난 동물'을 '개'라고 여긴다고 가정합시다. 이 때 누군가는 '개'가 '푸들'이라고 여기고, 누구는 '진돗개'라고 여기고, 또 누구는 '저먼 셰퍼드'라고 여깁니다. 상대가 떠올리는 '개'에 대한 이미지는 타인은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하죠.
| Poodle(푸들) - 반려견의 한 품종 Pooh-poohing(비웃다, 무시하다) - Poo(Poodle의 앞글자)와 유사(상사의 무시하는 태도를 환기) Whoops(이런) - Poo와의 발음 연결 Adir(상사 이름)과 Claire(개 이름) - 영어 발음 상 두 이름은 라임(rhyme)을 이룸 Shit(젠장) - Poo(똥)이라는 소리의 의미론적 연결이자, 배설물과 관련된 무의식적 표출 |
| 화자가 '푸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한 개 이야기가 아니라, 소리의 사슬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상사에 대한 분노와 자신에 대한 검열을 드러내는 행위 |
결국 그녀가 "푸들"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한 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소리의 사슬'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상사에 대한 분노와 억압된 자신을 검열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예시가 보여주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말이 나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라캉의 유명한 명제가 등장합니다.
기표(signifier)는 다른 기표에 대해 주체(subject)를 대리한다
- 자크 라캉
나는 내가 뱉은 기표(S1)와 그다음 기표(S2) 사이의 미끄러짐, 그 간극에서 잠깐 반짝하고 나타나는 효과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기표들의 행렬 끝에는 언어로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구멍, 즉 -1 (실재, The Real)이 남습니다(S1, S2, S3, ..., -1).
위의 푸들의 예시를 통해 라캉은 기표(signifier)는 다른 기표에 대해 주체(subject)를 대리한다고 주장하며 '나'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뱉은 기표1(S1), 기표(S2) 사이의 간극에서 잠깐 효과로서 발생한다(S, S, S, ... , -1)고 보는 것이죠.
| 상상계 (The Imaginary) |
거울 단계(mirror stage)와 관련됨 내가 '완전하다'고 믿는 환상의 영역 이미지의 세계 |
| 상징계 (The Symbolic) |
언어와 법의 세계 언어를 배우면서 사회적 주체가 됨과 동시에 본능적인 욕망을 억압당함 소쉬르의 언어 구조가 지배하는 곳 |
| 현실계 (The Real) |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상징화(말)되지 못하고 남는 찌꺼기 트라우마나 공포처럼 말로 설명 안 되는 영역 |
우리는 거울을 통해 이미지(Imago)를 보며 '저게 나야'라고 믿고(상상계), 언어를 배우며 사회적 존재가 됩니다(상징계).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말해질 수 없는 진실(Real)'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아(Ego 혹은 Self)'란, 사실 언어의 바다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losing oneself), 상실된 주체의 그림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의도한 것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말하거나(무의식의 표출), 덜 말하게 되는(소통의 실패) 존재니까요.
1-3. 해석적 시학:무의식으로의 귀 기울이기
1-3-1. 해석적 시학:무의식으로의 귀 기울이기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을 때 무엇을 듣고 있을까요?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정리한 정보(Information)만 듣고 있는 건 아닐까요?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 듣기(Listening)의 차원 자체를 다시 묻습니다. 라캉에 따르면 상대방을 일관된 자아(Self)가 아니라, 언어 속에서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분열된 주체(Subject)'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는 '듣기'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이죠.
연구자가 인터뷰 대상자를 만날 때, 과거에는 그를 '정보를 가진 이성적인 자아'로 대했습니다. 하지만 라캉을 경유한 탈근대주의적 듣기는 다릅니다.
| 말하는 주체 (Speaking Subject) |
우리 모두는 말하는 주체이며, 우리가 입을 열 때마다 무의식(unconscious)은 언제나 작동함 |
| 연구자의 태도 | 연구자는 정신분석가(치료자)는 아니지만, 인터뷰 대상자의 말속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의 효과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함 |
연구자와 인터뷰 대상자 모두 말하는 주체이며, 연구자는 인터뷰 대상자의 말 속에 작동하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이를 위해서 논문은 해석적 시학(interpretive poetics)이라는 텍스트 분석 도구로서의 독해법을 추천하죠.
| [해석적 시학의 5개의 해석 층위] | |
| 이야기 줄거리(story threads) 분열된 '나'(divided "I") 주소(address) 말할 수 없는 것의 언어들(languages of the unsayable) 무의식의 기표들(signifiers of the unconscious) |
이 해석적 시학은 무의식을 다양한 각도에서 읽기 위한 위에 소개한 말 속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의 흔적을 포착하기 위한 5개의 해석 층위로 구성됩니다. 물론, 인터뷰 현장에서 인터뷰 대상자의 무의식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렇기에 이 방법의 목적은 해석을 단정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논문은 이 개념들을 지식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실제 인터뷰에서 해석적 시학의 방법으로 인터뷰에 임해서 인터뷰 대상자의 말을 이전과 다르게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해석적 시학은 분석 기법이기 이전에 연구자의 듣기 태도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방법이죠. 그렇게 논문은 5개의 해석 층위에 대해 인터뷰 예시를 들어 설명합니다.
1-3-2. 이야기 줄거리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하지만, 의사소통으로의 각각의 시도의 그 대가는 듣기 위해 필요한 억압(repression), 즉 억압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억압은 우리의 연설(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의 형태에 내재되어 있으며 무의식적인 검열(unconscious censorship)이다.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해석적 시학에서 이야기 줄거리(story threads)는 연구자가 가장 먼저 훈련해야 하는 기본적인 듣기 방식입니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위해 듣기를 시작한다면, 화자의 발화에 대한 무의식적인 검열로서의 억압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적으로 발화 시에 무언가를 잘라내는 것인데, 그 흔적은 말의 구조와 반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내용'이 아닌 노래의 멜로디(melody of a song)를 듣듯 '이야기의 줄거리(흐름)'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이야기 줄거리는 인터뷰 전체를 관통하며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우회적으 등장하고 직접 말해지지 않지만 미묘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말합니다.
“전 알아요, 왜냐하면 ~라고 들었거든요...(I know, because I’ve been told…)”
“전 몰라요...(I don’t know…)”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어요.(There’s definitely something I’m not remembering.)”
“기억이 없어요... 거대한 공백이죠.(I have no memories… a gigantic gap.)”
- 에밀리(Emily)
인터뷰 속 에밀리는 4살부터 14살까지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하지만, 그 시기에 무언가가 있었음을 확신합니다. 이렇게 '모르지만 알고 있다'라는 이야기 줄거리가 형성됩니다.
“전 제가 모르는 언어로 꿈을 꿉니다...(I dream in a language I don’t know…)"
"전 프랑스어로 많이 꿈꿔요.(I dream in French a lot.)”
- 에밀리
그녀는 프랑스어를 말하지 못하지만 프랑스어로 꿈을 꾼다는 사실로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이 말은 이야기 줄거리의 반복된 신호 중 하나로 포착되었죠.
"제가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제 발을 잡고 있는 제 어머니 같이 모든 종류의 것들을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When I started to write, I started to remember all sorts of things, like my mother holding my feet.”)
전 잘 때 이 토끼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전 항상 (토끼의) 발을 잡죠...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음, 우리 엄마가 했던 것을 전 떠올렸어요.
(“I have this rabbit that I sleep with… and I always hold her feet… and I remembered through my writing, that's um, what my mother did.”)
"당신은 그녀가 저와 제 발을 잡고 있던 걸 봤었어야 해요"(“You could see her holding me up and holding my feet…”)
- 에밀리
대안적 기억은 글쓰기와 사진 보기를 통해 떠올린 어머니와의 신체적 접촉의 기억입니다. 이는 에밀리에게 고립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들과 대비되는,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이어가게 하는 기억이죠.
논문은 에밀리와의 인터뷰에서 '신경학적으로 불가능한 시기의 기억(9개월 이전)'에 그녀의 기억 중 일부가 있다는 것에 '어떻게 그 기억을 내러티브적으로 구성하는가'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논문은 '앎-말하기-글쓰기의 줄거리'와 '모름-침묵-부정(삭제)의 줄거리'가 존재하며 이 두 줄거리가 끊임없이 충돌하며 모순을 형성하는데, 그 모순은 에밀리에게도 완전히 의식되지 않습니다. 라캉의 말처럼, 기억에는 항상 한계가 있으며, 이 분석은 의식적으로 말해지는 기억의 경계와 그 틈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1-3-3. 분열된 '나'
해석적 시학의 두 번째 분석 층위인 분열된 나(the divided “I”)는 화자가 말할 때 언제나 하나 이상의 목소리를 동시에 사용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동일한 대명사 “I”를 사용하더라도, 주체는 자신을 말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분열된다.
화자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이상화된 자아, 즉 거울 단계에서 형성된 완전하고 통합된 이미지인 가상의 '나'(imaginary “I”)로 재현하려 합니다. 이 상상적 '나'는 일관되고 낭만화된 서사를 유지하며, 화자의 의식적 이야기를 이끌죠.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 자아는 말 더듬기, 침묵, 말실수, 무의식적 기표에 의해 반복적으로 방해받습니다. 이러한 틈에서 드러나는 목소리는 현실계(the real)에 연결된, 순간적인 혼란과 비일관성을 지닌 흔들리는 ‘i’이죠. 이 두 목소리(이상적 자아를 유지하려는 imaginary “I”와, 의도치 않게 진실의 흔적을 드러내는 faltering i)의 긴장이 바로 분열된 '나’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원 과정이] 제 글쓰기를 망쳤기 때문에 [그 대학원 과정을] 그만뒀습니다. 제 글쓰기, 그것에 대한 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 그걸 인식할 수 있죠. 바로 그곳에서 제게 진정한 기억(the real remembering)이, 삶(life)처럼, 나타났어요. 그것은 스티븐스 박사(Dr. Stevens)[치료사]와 제가 해낼 수 없었던 무언가입니다. 절대로요.
- 에밀리
에밀리의 인터뷰에서 이 개념은 해로운 치료사에 대한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밀리는 사회학 대학원을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기로 한 선택을 정당화하며, 글쓰기를 '기억이 살아나는 장소', '내 안의 삶'과 연결하죠. 이는 자신의 선택을 의미 있고 일관된 삶의 이야기로 구성하는 가상의 '나'의 목소리입니다.
- 인터뷰어 애니(Annie) : 왜 당신은 그녀와 그런 종류의 글쓰기를 경험할 수 없었나요?
- 에밀리 : 왜냐하면 제가, 그러니까 그녀가, 그녀가 언어를 학대했거든요(She abused language), 진짜에요, 그녀는 힘을 남용했고, 언어를 남용했어요.(She abused power and she abused language.)" [8초의 침묵] 그리고 저도 이게 센 말이란 거 알아요
- 에밀리와의 인터뷰
그러나 치료사에 대해 말하는 순간, 에밀리는 갑작스럽게 말을 더듬고 실언을 합니다. 그녀는 치료사가 '언어를 학대했다'고 말하려다, '그러니까 그녀가'라며 정정합니다. 이 짧은 말실수는 누가 언어를 학대했는가라는 질문을 열어두며, 의식적으로 통제된 서사를 흔들죠. 이 지점에서 흔들리는 '나'는 글쓰기를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이야기와, 치료사에게서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 사이의 균열 속에 끼어듭니다. 결국 이 사례는, 주체가 자신을 말할 때 완전하고 통합된 자아는 유지될 수 없으며, 말의 틈과 흔들림 속에서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간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해석적 시학이 말하는 분열된 '나'의 핵심이죠.
1-3-4. 주소
분열된 '나'(Divided I)가 이야기 속에서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주소'가 등장합니다. 평소 에밀리는 인터뷰어인 애니를 타자(the other)로 인식하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때 '너와 나'라는 관계 속에서 대화가 이어지죠. 그러나 에밀리의 목소리가 흔들리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 그녀는 더 이상 눈앞의 인터뷰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의 '타자(The Other)', 즉 담론 속에서 인지되지 않은 누군가를 향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에밀리 : 스티븐스 박사는 자신의 권력을 몸으로 체현하지 않음으로써 그 권력을 남용했어요… 그녀는 영어를 하지 않아요, 아니, 음, 이건 좀 못되게 말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애니 : ‘몸으로 체현하지 않음으로써(by not-embodying)’은 무슨 뜻이에요?
에밀리 : 식수(Cixious)가 ‘몸으로부터 쓰기(writing from the body)’에 대해 말한 거 알아요?
애니 : 아, 네.
에밀리 : 스티븐스 박사는 몸에서 나오는 말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죠. 하지만 나와 같은 방에 앉아서, 아주 신체적인 경험들(bodily experience), 깊이 폭력적인 신체적 경험들(violent bodily experiences)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몸에서 나온 말이 아닌 단어들(words that come from a body)로 말한다는 게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애니 : 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녀의 말이 몸 안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었어요(how could you tell)?
에밀리 : 그녀(스티븐스 박사)는 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She never loved me). 그것이 진실입니다(That's the truth). [8초의 침묵] 전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스티븐스 박사와 에밀리)가 여기서 4년이나 함께 앉아 있었는데, 당신은—당신은 나를 몰라요, 저를 사랑하지도 않고요. 당신은 제 삶 속에서, 제 기억 속에서 까꿍 놀이(peek-a-boo)만 해요. 하지만 '나'라는 사람(me, the person)을 알지는 못해요.
- 에밀리와의 인터뷰
논문은 에밀리는 표면적으로는 치료사를 비난하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인터뷰어인 애니 혹은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앎의 타자'에게, 4살 때 떠나온 할머니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판단하며 '내러티브에서 향하는 대상(address)'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1-5-4. 말할 수 없는 것의 언어들
말할 수 없는 것은, 비록 그 지시대상은 말하기 너머에 있을지라도, 말하기 '안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의 언어는 부정(반대되는 것을 환기시키는 기능), 수정(주체가 자신의 생각과 불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능), 연막(흔적을 남기는 무언가로부터 청자의 주의를 돌리는 기능)..., 침묵(말의 흐름 속에서 재현 불가능한 '실재(the Real)'를 불러내는 기능)에서 감지될 수 있다.(It is crucial to note that the unsayable is 'in' speaking, though its references lie beyond speaking. Languages of the unsayable can be detected in negations, revisions, smokescreens... and silences.)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논문은 '말할 수 없는 것'은 말 그 자체 안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바는 말 너머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라캉의 이론을 빌려, 화자가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말을 번복하는 순간에 진정한 존재의 흔적이 드러난다고 강조합니다.
"아, 네. 지금 치료사와는—음, 그녀를 뭐라고 부를까요? ‘Bea’라고 부를게요. be 처럼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to be or not to be)’처럼요, 끝에 ‘a’를 붙여서요. 베아와는 완전히 달라졌어요.(Oh yes, with my current therapist, with, ah, what will I call her? I'll call her Bea, like be, ‘to be or not to be,’ but with an ‘a.’ With Bea it's completely different.)”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두 세션을 연달아 하는 시간이었죠. 그리고 오래된 사진들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 가고 있었어요.(We sat together side-by-side on a Saturday afternoon, a double–session, putting together the fragments that have fallen away from my old photographs.)”
- 에밀리
이후 그녀가 치료비 청구에 대해 새로운 치료사가 돈 이야기를 부정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논문은 이 내러티브에서 에밀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분석했으며, 새로운 치료사가 휴가를 갈 때, 에밀리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를 원한다는 말에 대해 그 치료사가 자신의 위치를 항상 알 수 있게 하겠다는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를 논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임을 지적합니다.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에밀리의 상상계—구성을 현실 그 자체로 착각하는—의 그림이다. 그곳은 이상화되거나 파괴적인 인물로 나타나는 모성적 여성들의 세계다.(What begins to emerge is a picture of Emily's imaginary (recall that the imaginary mistakes a construction for reality itself)—a world of maternal women who appear as idealized or destructive figures.)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이렇게 논문은 에밀리의 이야기에서 '이상화된 어머니상(Bea)'와 '파괴적인 어머니상(Dr. Stevens)'으로 분열된 세계가 드러난다고 봅니다. 이는 에밀리가 현실이 아닌 구성을 실재로 착각하는 상상계(Imaginary) 속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면서 논문은 의식적으로 서술된 내용(Bea와의 완벽한 사랑과 치유)을 반박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다음 단계의 분석에서 이러한 인물들(기표)을 다시 살펴볼 것임을 예고합니다.
1-3-5. 무의식의 기표들
무의식의 기표는 주체 자신은 듣지 못하는 방식으로 담론 속에서 반복된다... 그것들의 연쇄, 즉 조직과 상호작용을 통해 무의식적인 것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
Signifiers of the unconscious repeat in discourse in ways the subject herself cannot hear... Through their chaining, that is, their organization and interplay, it is possible to hear what is unconscious.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논문은 라캉의 이론을 바탕으로, 담론 속에서 반복되는 기표들(signifiers)이 무의식으로 향하는 직접적인 통로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주체인 화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해석자는 반복되는 단어, 소리, 구절의 연쇄를 통해 무의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논문은 에밀리의 이야기에서 'Commit(Committed)', 'Be(Bea)', 'Dropped'라는 단어들이 문맥에 따라 의미가 미끄러지며(sliding) 서로 연결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 인터뷰 속에서 에밀리의 주요 기표 | |
| 주요 기표 | 설명 |
| commit(수용하다) be committed(수용되다, 헌신하다) |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됨(commited) - 세상과의 격리 스티븐스 박사는 병리적 회복에만 헌신함(be committed) - 잘못된 헌신 베아는 에밀리의 앎에 대해 약속하고 헌신함(be committed) - 올바른 헌신(?) |
| be(존재하다) Bea(베아) |
Bea와 be의 음운론적 연결은 Bea라는 존재가 에밀리의 삶과 죽음, 존재론적 문제와 깊이 얽혀 있음을 시사 |
| dropped(떨어진, 버려진) | 에밀리는 전 치료사에게서 버려진(dropped) 경험을 했음 Bea의 비현실적인 약속이 결국 지켜질 수 없기에, 무의식적으로는 또다시 버려질(Dropped) 가능성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해석 |
이 주요 기표들을 통해 논문은 에밀리가 '어머니, 스티븐스 박사, 베아'라는 세 인물을 기표 'being, being dropped, being committed)로 연결하여 하나의 '합성적 대리모(composite surrogate mother)'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는 유아기 때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죠.
주체는 일시적이고, 덧없으며, 이미 상실되었으나, 언제나 생성되어 가는 존재이다.
The subject is transitory, fleeting, lost already, yet always coming into being.
- <말할 수 없는 것,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내러티브 인터뷰의 기술>
저자는 자신의 해석적 방법 또한 결함이 있으며(flawed), 텍스트를 완전히 매개 없이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분석의 핵심은 주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유동적인 존재임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완벽한 해석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말의 틈새로 새어 나오는 침묵과 떨림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고정된 '자아'의 환상을 넘어 끊임없이 생성되는 생생한 '주체'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