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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부모 사랑을 기린 고려 효자 손시양, 경주 황남동 손시양 정려비

호기심꾸러기 2025. 10. 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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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출처 : 카카오맵

경주 황남동 효자 손시양 정려비
보물
이 비는 손시양(孫時揚)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고려 명종 12년(1182년)에 세운 것으로 현존하는 효자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려비(旌閭碑)는 충신,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던 마을에 세웠던 비석이다.

이 화강암 비석에는 사각 기둥 모양의 몸돌만 있고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다. 앞면에는 '孝子里[효자리]'라고 크게 쓰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손시양의 효행과 비를 세운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손시양은 고려 중기 사람으로 부모가 돌아가시자 초막을 짓고 각각 3년식 묘소를 지킴으로써 자식의 도리를 다하였다. 그의 효행을 동경유수(東京留守) 채정(蔡靖)이 나라에 보고하니 나라에는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우고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원래 길가에 비석만 세워져 이었는데 1977년에 지금 모습과 같이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을 만들어 세웠다.

기록상 삼국시대부터 도덕적·유교적 관점에서 선행을 한 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 사람이 난 마을에 정문(旌門)이라는 붉은 문을 세운 정려(旌閭)라는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고려 시대 이 경주땅에서 손시양(孫時揚)이라는 인물이 6년간 부모의 3년상을 치른 것에 대한 효행으로 이곳은 효자리(孝子里)라는 마을이름을 하사받았고, 그 효자를 표창하기 위해 세운 붉은 정문이 세워집니다. 세월이 흘러 비석만 남았지만, 부모님을 기억했던 한 손 씨 집안의 사람은 후대에 고려시대 유교적 도덕적 이상적 인간군상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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