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민 참여 구국운동의 현장의 기억,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1907년 대구에서 일어난 최초의 애국애족운동의 하나인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게승하여 8.15광복, 제2의 국채보상운동 전개로 IMF경제난 극복과 도심지내 녹지공한 확보로 시민의 안락한 휴식과 문화 활동공간 제공을 위해 조성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입니다.

공원의 입구에는 1998년 12월 21일에 세워진 대구시민의 화합과 번영을 비는 마음으로 맑고 밝은 소리로 그 뜻을 길리 알리는 달구벌대종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매년 1월 1일에 타종행사가 열리죠.

이 달구벌대종 오른편에선 국채보상운동이 어떤 운동인지 읽어볼 수 있습니다.
| 국채보상운동(The National Debt Repayment Movement) |
|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날 구국정신의 결정이다. 1907년 1월 29일, 애국개몽단체인 대구 광문회(회장 김광제)에서 서상돈 선생이 건의함으로써 첫 횃불이 올랐다. "일본 차관 1300만원으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으니, 담배를 끊어서라도 국민의 힘으로 국채를 갚아 국권과 국토를 보존하자"는 외침에 200여 회원들은 분발하여 즉각 전국적으로 실행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2월 21일 북후정(北堠亭)에서 열린 '국채보상대구군민대회'에는 수많은 시민이 다투어 참가했으며, 남일동에 사는 부인 일곱사람이 패물을 바침으로써 전국여성국채보상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이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 이름없는 걸인으로부터 고종황제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구국운동으로 승화하였다. 이 비폭력항일정신은 뒷날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으로 이어져 우리의 소중한 정신 유산이 되었다. |



공원 입구에서 오른편에는 가을에 단풍이 이쁘게 피는 단풍거리가 있는데, 이곳 입구에는 2020년부터 대구시민의 날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2월 21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공원 입구에서 왼편으로 조금 가다보면 이 공원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 공원조성연혁 |
| 우리 대구는 신라와 가야 천년문화의 찬란한 전통을 이어 받아 역사의 당당한 주역으로 발전해 온 유서 깊은 도시이다. 대구사람들은 추울 대 춥고 더울 때 더운 기후처럼 어려울수록 더욱 강해지는 시민정신으로 국난극복의 선봉이 되어왔다. 구한말 이곳에서 점화되어 삼천리 방바곡곡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나갔던 국채보상운동은 그 으뜸가는 사레이다. 국채보상의 숭고한 뜻을 되살려 시민의 긍지를 드높이고, 대구를 푸른 숲, 맑은 물이 어우러진 아름답고 격조 높은 환경도시로 가꾸고자 문희갑 시장의 의지와 온 시민의 정성이 모여 대구도시개발공사의 시공으로 도시 한 복판 (구)동인공원 자리에 새롭게 공원을 만들었다. 또한 대구시민의 얼과 기상을 온누리에 전할 달구벌대종을 건립하였고, 이 땅의 무궁한 안녕과 복된 삶을 염원하며 달성의 낙락장송 다섯 그루를 항공으로 운반하여 옮겨 심었다. 이후 각계 시민들이 대형 소나무와 자연석을 기증하여 이 뜻에 동참하였고, 예술인까지 나서 자발적으로 시와 명언이 새겨진 비문제작에 나섰으니. 오호라 이제 이곳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새천년 새시대 위대한 대구정신의 산실이자 시민화합의 새로운 터전이 될 것이다. |

그렇게 작은 분수와 바람개비가 있는 길을 따라, 의자가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다보면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이 나옵니다.


1901년 10월 10일, 부산 지역 교서(交西) 산하정(山下町)에 홍도회 부산지부 독서구락부 도서실이 세워지며 한국공공도서관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흘러 1919년 7월 지금의 경상감영공원에 경상북도청 뇌경관(賴慶館) 구내도서관이 개관하며 한국의 두번째 공공도서관이 열렸습니다. 이 도서관은 1975년 (구)대구고등법원 자리로 옮겼다가 1986년 현재의 자리로 신축이전해 지금까지 쓰이고 있죠.
| 개장시간 | 유아어린이자료실 : 평일 09:00-18:00, 주말 09:00-17:00 종합자료실 : 평일 09:00-20:00, 주말 09:00-17:00 인문자료실 : 평일 09:00-22:00, 주말 09:00-17:00 보존서고(직원 문의 필수) : 평일 09:00-18:00, 주말 09:00-17:00 |
| 휴관일 | - 매월 첫 번째, 세 번째 월요일 - 관공서 공휴일(단, 일요일과 겹칠 경우 휴관), 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날 |
현재 이 건물의 1~2층은 국채보상운동 기록전시관으로 운영하고 3~4층은 국채보상운동 도서관으로 운영중입니다.

공원 군데군데에는 이렇게 작은 분수가 있습니다. 또한, 음악분수도 있어서 여름 오후의 무더위를 잠시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공원을 둘러보면 다양한 포토스팟도 있으니 기념사진을 찍고 싶으시면 찾아보세요~

공원 북쪽에는 국채보상운동여성기념비가 있습니다.


| 건립문 |
|
| 건립문 | 참여하신 분들 |
| 국채보상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은 눈부시었다. 여학생은 물론 가정의 부인에서 기생에 이르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성 못지않게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였다. 지금까지 역사의 뒷면에 잇던 여성들이 나라의 위기에 당면하여 역사의 전면에 뛰쳐나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대구 중구) 남일동 7부인회는 비녀와 반지를 뽑고 깊이 숨겨두었던 보석을 국채보상금으로 헌납함으로써 그 후 수많은 여성들이 그 뒤를 따르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 근대 여성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외환위기 대의 금 모으기 운동의 전형이된것이다. 우리는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여기 남일동 폐물폐지부인회의 <경고 아 부인동포라>라는 역사적인 격문과 함께 전국 28개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의 이름을 돌에 새겨 청사에 길이 남긴다. |
국가보훈처 대구광역시 강명옥 곽승호 김규재 김난희 김동주 김은옥 남성희 류병선 문신자 박근규 박원범 박윤경 배근희 서인제 손동부 신동학 이덕록 최상희 목련미용연구회 감역 이상원 제작 이상일 |
| 2006년 2월 21일 (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영호 |
|

국채보상운동 당시 지금의 중구 남일동 109번지((구)제일극장)에서 일곱부인의 취지문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조선 부인들의 드높은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 |
| 경고 아 부인동포라 우리가 함께 여자 몸으로 규문에 처하와 삼종지의에 간섭할 일 오래 동안 없아오나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에나 어찌 남녀가 다르리오. 듣사오니 국채를 갚으려고 이천만 동포들이 석달간 연초를 아니 먹고 대전을 구취한다 하오니 족히 사람으로 흥감케 할지요. 앞날에 아름다움이라. 그러하오나 부인을 논외로한다니 대저 여자는 백성이 아니며 화육 중 일물이 아니오. 본인 등은 여자의 소치로 일신 소존이 다만 패물 등속이라.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치 아니하고 하해가 가는 물을 가리지 아니하기로 작음으로 큰 것을 도우나니 유지하신 부인동포들은 다소를 물구하고 혈심 의연하와 국채를 청장하심이 천만행심. 정미 정월 십일일 (1907년 2월 23일) |
| 발기인에 대구 동상 남일동 정운갑 모 서씨(서채봉) 은진환 일불 두냥중 서병규 처 정씨(정경주) 은장도 일개 두냥중 정운하 처 김씨(김달준) 은지환 일불 한냥 구돈중 서학균 처 정씨(정말경) 은지환 일불 두냥중 서석균 처 최씨(최실경) 은지환 일불 한냥 오돈중 서덕균 처 리씨(이덕수) 은지환 일불 한냥 오돈중/은가지 삼개 김수원 처 배씨 은연화 일개 두냥 구돈중 |

그 뒷편에는 28개의 전국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의 명단이 쓰여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답게 경상도에서 가장 많은 단체가 나왔고, 지역이 아니더라도 연암이씨문중부녀회처럼 집안이 모여 부녀회를 결성한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여성국채보상운동단체 | |
| 서울 | 대안동국채보상부인회, 부인감찬회, 국채보상여자의성회 |
| 경기도 | 인천국미적성회, 김포검단면국채보상의무소, 안성군국채보상부인회, 남양군부인의성회 |
| 충청도 | 진천군국채보상부인회 |
| 전라도 | 금산봉황정부인회, 제주삼도리부인회, 제주함덕리국채보상기성회 |
| 경상도 | 대구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 부산항좌천리감선의연부인회, 부산상의소단연동맹부인회, 영도국채보상부인회, 수정동부인의연회, 진주애국부인회, 진주애국상채회, 창원항국채보상부인회, 경주군국채보상부인회 |
| 황해도 | 안악군국채보상탈환회 |
| 평안도 | 삼화항패물폐지부인회, 삼화항비석동예수교부인국채보상회, 선천군부인의성회 |
| 함경도 | 청북강계부인급수보상회, 영흥군국채보상감반회 |
| 기타 | 연안이씨문중부녀회 |

국채보상운동 여성기념비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면 이 국채보상운동을 앞서 이끌었던 독립지사 김광제와 서상돈 선생의 흉상과 그들의 업적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 김광제(金光濟, 1866-1920)·서상돈(徐相敦, 1850-1913) 지사는 을사늑약(1905.11.) 이후 일제의 경제 침략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위기에 놓이자 1907년 1월부터 온 백성이 석 달 동안 담배를 끊어 그 대금으로 나랏빚을 갚자며 국채보상운동을 주창주도했다. 들불처럼 전국으로 확산된 이 운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 그 정신은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 외환위기의 금모으기운동으로 계승됐다. 이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길이 귀감이 되게 하기 위해 이 운동 100주년을 맞아 두 시자의 흉상을 건립하다. |
| 2007년 2월 21일 |
| 대구광역시 매일신문사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



| 개장시간 | 하절기(3월-11월) : 09:00-18:00 동절기(12월-2월) : 09:00-17:00 |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 추석 명절 |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휩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자 건립되어 2011년 10월에 개관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입니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공원은 1907년의 뜨거웠던 애국애민정신과 항일정신을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그 이야기는 후세에 계속 전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