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술라이만투 국립역사고고학박물관,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역사를 담다



술라이만투국립역사고고학박물관(Сулайман-Тоо Национальны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 혹은 주박물관(главный музей)입니다.


봄가을시즌의 술라이만투와 박물관 영업 시간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특히 분기별로 마지막주에 청소를 한다고 하는데, 제가 갔을 땐 2025년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박물관단지 샬균 및 위생 청소를 위해 문을 닫는다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 술라이만 국립역사고고학박물관단지 | 영업 시간 |
| 술라이만투 국립역사고고학박물관(주박물관) | 화-일 09:00-18:00 (17:30, 매표소 마감) 월요일 휴무 |
| 동굴박물관 | 화-일 09:00-18:00 (17:30, 매표소 마감) 월요일 휴무 |
| 술라이만투 산(순례길) | 월-일09:00-18:00 (17:30, 매표소 마감)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휴무 |
| * 각 분기 마지막주 토요일 - 박물관단지 전체 휴무(대청소일) | |

| 50솜 | 개인관람(7-16세) |
| 70솜 | 개인관람(성인) |
| 80솜 | 기념영상/사진촬영 |
| 90솜 | 테마단체투어(10-20인)(학생) |
| 100솜 | 일반단체투어(10-20인)(학생) |
| 150솜 | 테마단체투어(10-20인)(성인) |
| 170솜 | 개인가이드투어(학생) |
| 180솜 | 일반단체투어(10-20인)(성인) |
| 250솜 | 테마단체투어(10-20인)(가족), 개인가이드투어(성인), 일반가이드투어(5-15인)(학생) |
| 300솜 | 일반단체투어(10-20인)(가족) |
| 370솜 | 일반가이드투어(5-15인)(성인) |
| 430솜 | 일반가이드투어(5-15인)(가족) |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한 뒤 입구쪽으로 와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관람이 시작됩니다.



올라가기 전에는 키르기스스탄의 민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가장 왼쪽부터 '바르스벡 카간(Барсбек-каган) 묘비 내용'과 복원품, 키르기즈 SSR의 최고위원회에 의해 1999년 9월 23일 키르기즈어에 국가 언어 지위가 부여되었다는 내용, 키르기스스탄 국장과 헌번, 그리고 국기, 마지막으로 키르기스스탄 국가가 쓰여져 있습니다.
| 키르기스스탄 문자 표기의 역사 | |
| 5-10세기 | 오르혼-예니세이 문자(Orkhon-Yenisei script) |
| 18세기-1927 | 아랍 문자 |
| 1927-1941 | 라틴 문자 |
| 1941- | 러시아 문자(키릴 문자) |


| Жети дүйнө үкмушта, жер жаралбай эл болбойт. | 일곱 세계가 운명 속에, 땅이 생기지 않고 민족이 되지 않는다. |
2층으로 올라가면 처음에 키르기즈 숲(Кыргыз токоиу)과 민족음유시인 제니조크 코코예프(Женижок Кокоев, 1860-1918)가 쓴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그 다음에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지도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과 그들의 저서,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지리를 사진과 함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발견된 다양한 화석들과 돌들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201호 전시관(Көргөзмө залы)으로 들어갑니다.



처음엔 키르기스스탄 남부에서만 자생하는 아이굴(Айгүл, Eremurus alberti)을 포함해 다양한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동식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손(孫, усунь)인과 함께 당시 쓰였던 다양한 유물들이 보입니다.


9-10세기의 계골(契骨, 키르기스)은 카간(Каган)을 중심으로 그 아래 헤시베이(Хэси-бэй, 대사령관), 아츠쥬이쉐베이(Ацзюйшэби-бэй), 아미베이(Ами-бэй)의 삼두체제로 이루어졌으며, 최고지휘관(главноначальствующий)-근위대(гвардия) 순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편, 행정적으로는 장관(министр)-통치자(управитель)-봉신세대군대(войско вассальных поколений)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유적 발굴 사진과 발굴된 다양한 유물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0-11세기 오시 지역에서 발굴된 점토로 만든 건축 장식입니다. 생각보다 정교한 구조물이네요.



오시주 우즈겐의 카라한 왕조 우즈겐 영묘(Узгенские мавзолеи Караханидов)와 관련된 자료와 유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점토로 만든 수도관도 인상적입니다. 유목민족이라는 인식과 다르게 어느 정도 도시를 이룬 곳에선 종종 이런 수도관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잘랄아바트주에 위치한 카라한 칸국 시절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샤흐파질영묘(мавзолей шах-фазиль)의 발굴 과정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이두국(государство хайду, 13세기 후반-14세기), 모골리스탄(государство Моголистан, 14세기 말-15세기), 티무르국(государство Тимура) 혹은 티무르왕조국(государство Тимураидов)(14세기말-15세기)의 영역과 티무르 제국의 티무르와 울루구베크(Улугбек, 1394-1449)의 원정로 등이 표시된 지도도 볼 수 있습니다.

티무르와 티무르 제국의 군인들의 모습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즈겐) 카바 요새에서 적에 맞서 싸우는 바부르 군대(1494)> 그리고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티무르의 5대손 바부르의 초상화, 그의 일기를 모은 책인 <바부르나마(Bāburnāma)>, 술라이만투 정상에 위치한 바부르의 방(Babur's house) 사진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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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의 둘째 아들 우마르 셰이흐(Умар-шейх, 1356-1394)의 가계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티무르 시대와 무굴 시대에 쓰였던 다양한 항아리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혁명 전 키르기스 씨족 및 부족 분포 지도입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단순히 키르기스인으로 일축시키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키르기스인은 정말 다양한 씨족과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키르기스 민족과 관련된 책들과 흉상도 볼 수 있습니다.

돌론 비(Долон бий)에게는 '흰 아들'이란 뜻의 아크우울(ак уул)(혹은 아굴(агул), 아빌(абыл))과 '회색 아들'이란 뜻의 쿠우우울(куу уул)(혹은 쿠울(куул), 카빌(кабыл))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크우울의 후예는 우익(оң канат), 쿠우우울의 후예는 좌익(сол канат)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후예들은 각각의 씨족과 부족을 구성하며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그 계보도도 볼 수 있습니다


키르기스 전통 민속 신앙과 관련된 도구와 옷 그리고 상징들도 볼 수 있습니다.



키르기스인이 사냥할 때 쓰던 물건들이나 사냥을 통해 얻은 동물 털가죽들도 볼 수 있죠.


전통적으로 쓰던 주방용품, 실로 자아서 만든 다양한 물품들.

그리고 키르기스 여성의 전통 의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외 다양한 장식품과 도구들도 만날 수 있었구요.



키르기스 전통 악기와 놀이 도구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코칸트 칸국의 통치자의 목록과 그와 관련된 사진과 유물도 볼 수 있습니다.

제1회 프랑스과학전시회(french scientific expedition)의 참가자들과 쿠르만잔 닷카의 아들들의 만남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한 때 남부를 호령했던 여왕의 아들들의 모습은 제국주의에 힘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19세기 키르기스 민족해방을 위한 운동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이 운동은 1821년부터 1874년까지 남부와 북부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알림벡 닷카와 그의 부인 쿠르만잔 닷카의 흉상입니다. 러시아 제국의 점령 전 남부 키르기스의 마지막 통치자였죠.


잡지 슈로(шуро)를 포함해 그 두 가족과 키르기스의 저항의 흔적을 담은 다양한 사진과 글을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당시에 쓰였던 총과 칼들입니다.

전통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였던 키르기스인들이 러시아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며 러시아의 문물도 접하게 됩니다. 종교적 물품을 포함해 당시 이 지역에서 쓰였던 다양한 러시아식 물품들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은 혁명에 의해 멸망하고, 자연스레 키르기스스탄 지역도 소련에 편입됩니다.

그 당시에 쓰였던 다양한 근현대 물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키르기스SSR에서도 다양한 소련 위인들이 등장합니다. 키르기스SSR의 남부 지역에서 활동한 소련 위인들과 관련된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소련이 해체되며 독립한 키르기스 공화국과 관련된 기념물들을 마지막으로 전시는 끝납니다.

가운데에도 술라이만투 모형을 중심으로 다양한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삶이 담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오시의 성산 술라이만투를 오르다
위치서부매표소 입구 : Улица Гапара Айтиева, 172а/2, Ош동부매표소 입구영업시간화-일 09:00-18:00 (17:30, 매표소 마감)전화번호+996 (3222) 2‒71‒23+996 (3222) 7‒07‒40+996 (3222) 7‒07‒96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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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을 빠져나가 계단으로 갑니다. 소를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압디카디르 오로즈베코프(Абдыкадыр Орозбеков, 1889-1938), 압디케림 시디코프(Абдыкерим Сыдыков, 1889-1938), 이셰날리 아라바예프(Ишеналы Арабаев, ?-1933), 이마날릐 아이다르베코프(Иманалы Айдарбеков, 1884-1938), 카심 티니스타노프(Касым Тыныстанов, 1901-1938), 주수프 압드라흐마노프(Жусуф Абдрахманов, 1901-1938) 등 키르기스SSR의 정치활동가들의 초상화가 계단을 따라 걸려 있습니다.

계단 한 편에는 술라이만투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 있더군요.


계단을 내려오고 바로 보이는 방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바닥에 별모양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옆방에는 다양한 현대 인물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사진처럼 잘 그렸더군요.

이제 입구로 가는 복도에 다다랐습니다. 저 복도의 끝에는 매표소와 입구가 있습니다. 복도의 오른편에는 술라이만투와 박물관에 관한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9년 5월 15일, 박물관 개관에 대한 결정이 떨어졌고, 1950년 12월 박물관 민간 개방 허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65m2의 크기에 268점의 전시물을 전시해 둔 박물관은 1951년에 개방됩니다. 이후 박물관은 1963년부터 1964년까지 정식학술기관으로 확립되었고, 1964년 박물관은 16세기에 지어진 라바트 압둘라한 대모스크 입구의 한 건물로 옮겨갑니다. 지금 그 건물에는 Т. 사디코프 오시주시각예술박물관(Ошский областной музей изобразительных искусств им. Т. Садыкова)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후 1978년 1140m2에 13개의 전시실 규모의 술라이만투 동굴 박물관이 완공되었고, 이곳에서는 오시의 고대 역사와 16세기까지의 중세 역사와 자연사 전시장이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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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4월 23일, 술라이만산 지역이 역사문화적 기념물들과 박물관 소장 유물들의 중요성이 고려되어 오시주 우즈겐(Узген)과 누우카트(Ноокат), 잘랄아바트, 바트켄주의 키질키야(Кызыл-Кия) 지역과 함께 '오시 통합역사문화박물관 보호구역'으로 지정됩니다. 1996년 3월 25일, 대통령령에 따라, 박물관 건물을 준비함과 동시에 다양한 관람 안내 시설을 술라이만투에 두기 시작합니다. 결국 오시 건설 3000주년을 맞은 2000년에 맞춰 이곳의 새로운 박물관이 완공되었고, 10월 5일, 아스카르 아카예프(Аскар Акаев, 1944-) 대통령이 개관 리본을 자르며 박물관이 열렸습니다.



2004년 4월 10일에 대통령령으로 박물관은 '국립박물관'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으며, 200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 회의에서 이 술라이만투가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공식적으로 등재됩니다. 이후, 2018년 '술라이만산' 박물관 단지의 토지 구획을 무상으로 사용할 권리에 대한 국가 행정 증서가 발급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박물관은 오시의 술라이만투를 필두로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역사를 방문객에게 고스란히 알려줍니다.

제가 방문했을 땐 '위대한 조국 전쟁 80주년 승리의 날 기념 "위대한 승리 80년" 임시 예술전시회(Улуу ата мекендик согуштун 80 жылдык жеңиш кунунө карата “Улуу Жеңишке 80 жыл” атту убактылуу көркөмө)'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쓰였던 군복, 여러 군용품, 시계, 전화기와 함께 키르기스 출신의 다양한 군인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술라이만투 국립역사고고학박물관은 단순한 역사 전시를 넘어,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자연, 민족, 문화, 정치, 종교, 근현대사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공간입니다. 고대 유적과 발굴품, 전통 민속품, 근현대 자료와 인물 초상화를 통해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역사적 흐름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