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위대한 키르기스의 아들 술탄 이브라이모프 기념상


키르기스스탄 오시의 С. 이브라이모프 국립드라마극장(Национальный драматический театр им. С. Ибраимова) 바로 동남쪽에 술탄 이브라이모비치 이브라이모프(Султан Ибраимович Ибраимов, 1927-1980)의 기념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1927년 9월에 추이주에서 태어난 그는 대조국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부터 고향의 콜호즈(집단농장)에서 농사일을 시작했다가 곧 기계트랙터기지(МТС, Машинно-тракторная станция)에서 일하게 됩니다. 이후 1955년에 키르기스SSR 과학 아카데미의 수자원연구소(институт водного хозяйства)에 소속되어 교사가 되었고, 토지 매립과 수자원 관리를 담당하는 장관직을 역임합니다.

이후 1968년에 키르기스공산당 오시주당위원회 제1서기로 발령받고 10년간 오시의 농부와 주민들을 직접 만나며 농업과 관련된 고충을 듣고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아마 그 덕에 그의 동상이 이곳에 세워져 있는 것 같아요.
| Бул эстелик Кыргыздын Чыгаан уулунун 75 жылдыгына карата 2003 жылы орнотулду. |
이 기념비는 키르기스의 위대한 아들의 75주년을 기념하여 2003년에 세워졌다. |
| Айкелчилер: Огобаев Марат К. Тентиев Эмиль А. Архитектор: Сулайманов Ш.Т. |
조각가 : 오고바예프 마라트 К. 텐티예프 에밀 А. 건축가: 술라이마노프 Ш.Т. |
아쉽게도 '키르기스의 위대한 아들'은 1980년 12월 4일 이쉬-56 <벨카>(ИЖ-56 «Белка»)라는 총으로 두 발을 맞고 사망합니다. 범인은 1층에서 마주친 운전기사도 쏴버렸죠. 이후 창문으로 다시 도망갔는데 범인을 찾지 못합니다. 당시 소련 KGB 제5부(пятое управление КГБ СССР)의 부장 필립 데니소비치 보브코프(Филипп Денисович Бобков, 1925-2019)의 명령으로 소련 최초의 지문감식을 하게 되어 결국 <키르기스 최고회의 의원 안내서>를 가지고 있던 러시아인 스마긴(Смагин)이 범인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적 적대감을 표현한 글을 쓴 뒤 목을 메서 죽은 상태였기에 사건은 종결되었죠.
술탄 이브라이모프는 키르기스 농업 발전과 주민들의 삶을 위해 헌신했던 정치가이자 행정가였습니다. 그의 삶은 비극적으로 끝났지만, 오늘날까지도 오시의 중심에 세워진 동상은 그가 남긴 발자취를 기리며, ‘키르기스의 위대한 아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