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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박재혁 의사와 함께 부산경찰서 폭파사건에 가담했다는 좌익계 독립운동가 최천택 선생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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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8. 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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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중앙공원 조각광장((구)조각공원)의 동북쪽 입구쪽에 독립투사 최천택 선생 기념비가 있습니다.


기념비 앞면에는 최천택 선생 얼굴 사진상이 있죠.
| 독립투사 최천택 선생 기념비 |
|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관리번호 : 40-1-28 |
| 독립투사 최천택(崔天澤, 1896-1961) 선생은 1896년 부산 좌천동에서 출생하여 일평생을 민족의 독립을 위해 사우다가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하여 1962년에 세상을 떠난 보기 드문 애국투사다. |

| 소정(蘇庭) 최천택(崔天澤, 1896-1961) 선생은 1896년 6월 1일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어린시절부터 민족의식이 강해 조선독립을 위해 일제와 맞서 싸웠고, 8.15광복 이후에는 민족자주와 통일을 위해 싸운 열렬한 독립투사였다. 부산상업학교(일제하) 재학시절부터 동국역사(조선사)책을 등사하여 학우들에게 배포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구금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8.15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무려 54회라는 기록적인 구속·구금이 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비밀결사대인 구세단 조직을 비롯해서, 생명을 담보한 독립 결사대인 의열단 활동, 3.1만세운동, 광주학생항쟁에도 부산지역 학생대표로 참가했으며, 박재혁의사와 함께 부산경찰서 폭파사건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으로 한쪽 눈을 실명까지 했다. 민족운동의 통일 전선체인 신간회(1927-1931) 부산지부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지회장에 피선되어 민족운동의 지도자로 헌신했다. 광복은 되었으나, 그토록 그리던 조국통일을 보지 못하고, 1962년 11월 17일 향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후대들은 선생이 남긴 민족자주정신과 불굴의 민족정기를 교훈으로 이어받아 후세교육의 산교육장으로 삼고자 이 비를 세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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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5일 김홍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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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진위원명단 | 이종석, 김홍주, 배다지, 김대상, 이길우, 최원규, 이춘섭, 조현종, 조평래, 이영석, 오기석, 김광남, 민숙례, 이상우, 하상연, 김상찬, 임현규, 변노섭 |
| 유족 | 김복삼(처) 최철(자) 최구(손) |
| 제작자 | 김영구, 이상화, 정희욱, 조민길 |
그는 좌파 사회주의 계열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것과 이승만 정부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도 한동안은 그의 업적을 드러내진 못했고, 간간히 '박재혁의사와 함께 부산경찰서 폭파사건에 가담한 인물' 정도로만 알려졌죠.

그러다가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면서 그의 업적을 확인하는 목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2009년 중앙공원에 이 비석이 세워지거나 2021년에 좌천동 옥성사에 있던 묘비를 좌천동 체육공원으로 옮겨지는 등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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