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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중앙공원의 소해 장건상 동상 –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의열단 지도자의 발자취

호기심꾸러기 2025. 8. 1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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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앙공원의 조각광장((구)조각공원)에 소해 장건상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소해 장건상 선생 동상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40-1-10
관리자 : 부산시설공단
소해(宵海) 장건상(張建相, 1882-1974) 선생은 경상북도 칠곡 출생으로 1916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동제사(同濟社, 1912-1922?)에 가입,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 동년 11월 의열단이 창립될 때 총장이 되어 기밀부의 요직을 맡아 국내 무기반입 등을 지휘하였으며, 1924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교총장으로써 의열단원 이종암 등의 입국을 지원하고 1926년 잡지 <혁명>을 중국 베이징에서 발간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27년 의열단 제3기 간부훈련을 마치고 민족혁명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1928년 의열단 고문이 되어 폭탄을 만들어 국내에 반입하는 일을 지휘하였다. 상하이 일본영사관 형사에게 체포되어 1941년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유예 석방되었고 1945년 독립운동선상의 좌우합작과 대동단결을 위해 임정대표로 옌안(延安)에 파견되었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는 198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장건상 선생의 독립정신을 후손들에게 일깨우기 위해 1991년 10월 동상을 건립하였다.

약력
1882.12.19., 경북 칠곡서 출생
1883, 부산 좌천동으로 이주
1891, 좌천제서당과 육영제서당서 수학
1903, 서울 공립영어학교 입학
1905, 일본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정치학과 입학
1906, 박영효(朴泳孝, 1861-1939) 소개로 주일미국공사관 한인무관학교 설치, 군사훈련 받다
1908, 시베리아 횡단, 미국 유학길 오름, 인디에나주(인디애나주) 발프레이조대학(밸퍼레이조대학, Valparaiso University) 법학과 입학
1912, 발프레이조대학 법학과 졸업
1916, 신규식(申圭植, 1880-1922) 선생 상하이서 상면, 동제사에 가담, 독립운동전선에 들다.
1917, 만주 안동현에서 망명객 길안내 담당
1919, 임정수립을 위한 한인거류민단국민대회준비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임정 외무위원 및 위원장대리
1923, 상해국민대표회의 상해지역대표참석, 회의초안 기초위원 피선

1926, 베이징에서 김성숙(金星淑, 1898-1969)과 잡지 <혁명> 발간
1929, 상하이 의열단 고문 폭탄 제조국 내 반입 지휘
1930, 베이징 화베이대학(華北大學) 교수로 재직
1939, 상하이 일본 영사관 형사에 체포 국내 압송
1940, 1년동안 국내 각 경찰서로 끌려다니며 고문 추달
1941, 가택연금
1942, 국내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 외교연구위원 임명, 임정국무위원 겸 학무부장
1944,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 개정 국무위원으로 피선
1945, 독립운동 좌우합작 대동단결을 위해 임정대표로 옌안(延安) 파견
1945.12.01, 임정요인 2진으로 환국
1946, 임정 7인 특별정치위원회 중앙위원 피선, 민전 14인 의장단 참여
1946.10.07, 좌우합작위원회 참석7원칙 합의
1947, 근로인민당 부위원 피선
1948, 남북정치협상 참석
1950, 5.30총선에 무소속 출마(부산을구:(현)동구) 유세 중 구속, 최초 옥중 당선
1960, 혁신동지회 총연맹위원장으로 추대
1961,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 의장단으로 추대, 삼일절 독립유공자로 표창, 5.16쿠데타군에 의해 구속
1962.03., 독립유공자로서 사면

1974.05.14., 타계하시다
1986,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1990.05., 독립기념관에 어록비 세우다.

세우기까지
애국지사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소해(宵海) 장건상(張建相) 선생님의 우국애민하시는 충정(衷情)을 기리기 위하여 송곡(松谷) 장도송(張都松)(소해 맏형님의 손녀)씨가 사재를 내어놓고 친지의 협조와 노태우 대통령, 부산시, 윤길중(尹吉重, 1916-2001), 김영삼, 김대중, 황욱(黃旭, 1898-1992), 문정원(文貞媛) 외 제현(諸賢)의 협력이 있게 되어 1990년에 충남 천원군 목천면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어록비를 세우고(어록비건립회장 이시찬(李時燦)) 자료집을 발간하였으며(협조 도서출판 우당(牛堂)-대표 안도후(安度侯)) 지속 사업으로서 이 동상을 세우게 되었다.

실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선생님의 동상을 세움은 하나의 애국운동의 일환이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성을 후손에게 일개우는 일이라고 믿어 확신하는 마음을 알리는데 있다 할 거시다.

삼가 이 나라의 영원함을 후손과 함께 지켜볼 것이다.
1991년 10월 일

소해 장건상 선생은 독립운동 전선에서 임시정부와 의열단, 민족혁명당 등 다양한 조직에서 활약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 그 자체이며, 동상 건립은 후손들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겠네요. 오늘날 부산 중앙공원 조각광장의 동상은 장건상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자유와 민족 자주를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뜻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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