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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자유대한민국의 바다를 지켜라! 중앙공원 대한해협 전승비
호기심꾸러기
2025. 8. 1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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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의 보수산에 위치한 중앙공원. 그 중앙공원 안 민주공원의 뒷편에는 대한해협전승비가 있습니다.


계단을 따라 전승비로 올라갑니다. 701이라고 쓰인 초계정(PC, patrol craft)의 모형을 형상화한 탑이 보입니다.
| USS PC-823 | 1943.11.08. 기공 1944.01.15. 진수 1944.07.24. 취역 1946.02.11. 퇴역 및 미국해사위원회로 이관 1948.05.18, 미국상선단사관학교(USMMA)로 이관 |
| 소위 화이트헤드(Ensign Whitehead) | 1948.06, 명칭 변경 1949.09. 한국으로 전출 |
| PC-701 백두산함(PCROKS Pak Tu San(PC-701)) | 1949.10.17. 도입 1949.12.26. 취역 1959.07.01.퇴역 1960.08.21. 해체 |
PC-701(701번 초계정)은 1944년 미국 해군에서 취역한 PC-823을 1949년 대한민국 해군이 도입한 초계함 명칭으로, 한국에서는 백두산함이라고 불립니다.

전승비 입구 옆쪽엔 대한해협해전의 개요가 지도와 함께 설명되어 있습니다.
| 대한해협 해전 개요 |
| 대한해협 해전은 대한민국 해군 백두산함(PC-701)이 1950년 6월 26일 새벽 부산 앞바다에서 북괴 특작부대를 수송중인 무장선박을 교전 끝에 격침시킨 6·25전쟁 중 최초의 해전이다. 백두산함은 국민의 성금과 해군 장병의 헌금으로 1949년 10월 7일 미국 뉴욕에서 구입한, 우리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으로 76미리(3인치) 포가 장착된 함정이었다. 6월 25일 15:00 진해항을 긴급 출항하여 동해로 북상중 20시 12분 부산 동북방 약 10마일 해상에서 국기와 선명도 없이 후갑판에 중기관총 2정을 무장하고, 북괴 정규해군 약 600여명을 탑승하여 부산지역 기습상륙을 위해 10노트의 속력으로 남하중인 1000톤급 북괴 수송선을 발견하였다. 백두산함 함장 최용남 중령 등 장병 60여명은 5시간여의 추적 및 교전 끝에 북괴 무장수송선을 26일 새벽 1시 38분에 완전히 격침시켰는데, 이는 우리나라 해군이 올린 최초의 승전이었다. 백두산함도 조타실 좌현 하부에 적의 포탄이 명중되어 사망자 2명, 부상자 2명이 발생하였으나 파편상과 관통상을 입고도 끝까지 임무를 다했던 조타수와 주포 전화수의 감투정신은 모든 군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는 남한의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려던 북괴의 기도를 사전에 분쇄할 수 있었고, 동서남해의 해상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후, 전범 김일성은 '전쟁 발발 3주안에 한반도 전역을 적화하려던 자신의 계획이 대한해협 해전의 패배로 무산되었다'고 회고한 바와 같이 이 해전의 승리는 바로 대한민국이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


백두산함 조형 앞 당시 전투에서 희생된 두 명과 함장의 흉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 대한해협전승비 |
| 대한해협해전은 1950년 6월 25일 전면 남침을 자행(恣行)한 북괴가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남파한 무장선을 우리 해군 백두산함(PC-701)이 부산 외해(外海)에서 26일 새벽에 격침시킨 해군 초유의 단독 해상 전투였다. 르 당시 격침된 북괴 함정은 800여명의 유격대가 탑승중인 1000톤급 무장함이었으며 백두산함은 해군 장병들의 성금(誠金)으로 구입된 우리 해군의 유일한 전투함(戰鬪艦)으로서 이 해전의 승리를 계기로 우리 해군은 남한의 전후방을 동시에 전장화하려는 북괴의 기도(企圖)를 사전에 분쇄하고 동서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여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여기 이 해전에 참전한 장병의 빛나는 무훈(武勳, 무공)과 전몰장병(戰歿將兵)의 고귀한 넋을 기리기 위하여 그날의 전승터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비를 세운다. |
| 1988년 12월 23일 |
| 해군참모총장 |

| 대한해협해전 참전 장병 | |
| 중령 | 최용남 |
| 소령 | 송석호, 신만균 |
| 중위 | 강명석, 유용빈, 김인현 |
| 소위 | 김종식, 최영섭 |
| 병조장 | 김영종, 이종인, 최석린, 최판길, 황명욱 |
| 일조 (일등병조) ((현)중사) |
김생용, 김종수, 서순이, 송홍기, 이덕봉 |
| 이조 (이등병조) ((현)하사) |
강윤석, 권진택, 김영진, 김창길, 안종경, 유봉화, 유제헌, 이종문, 이태기, 전병익, 정인화, 조경규, 조삼제, 한준희, 홍양식 |
| 삼조 (삼등병조) ((현)병장) |
김남순, 김세현, 김용순, 김주호, 김창학, 김춘배, 김호민, 박순서, 박승만, 오일수, 윤영록, 윤지호, 이길선, 이유택, 장학룡, 정준환, 조병호, 조종래, 최감식, 최도기, 한종기 |
| 일수 (일등수병) ((현)상병) |
김동식, 김성기, 김수검, 김용광, 문영구, 박동석, 서홍정, 정병열, 허만권 |
| 이수 (이등수병) ((현)일병) |
고영성, 이상숙, 최효충 |
그들의 희생을 생각하며 잠시 그들의 이름을 읽어봅니다. 함장 최용남 조차 당시 27살이었는데, 한창 청년이었을 해군들이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 전병익 해군 일등병조(현재 중사) (1929.06.4.-1950.06.26.) |
| 1929년 6월 24일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난 전병익 일등병조는 1947년 해군에 입대하였으며, 6.25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대한해협(부산 앞바다) 해전에서 불법 남침한 북한 군함과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나라에서는 백두산함 장포사로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3인치 포탄 장전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여 적함을 격침시키고 나라를 지키는데 공헌한 전병익 일등병조에게 1계급 특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해군은 대한해협 전승 60주년을 맞아 6.25전쟁 당시 남한의 전후방을 동시에 교란하여 한반도를 적화하려했던 북한군의 기도를 저지하고 부산을 사수했던 대한해협해전 전승 의의를 전 장병, 참전용사, 부산시민이 함께 되새기며, 대한해협해전의 영웅 고 전병익 일등병조의 목숨바쳐 나라를 지킨 숭고한 뜻과 정신을 길이 기리고 계승하고자 그의 흉상을 건립하였다. |
| 2010.6.24. |

| 백두산함장 최용남 해군 중령 (1923.10.15.-1998.11.26.) |
| * 1946.05.01. 해군 소위 임관(특임) * 1950.04.10.-1950.12.07. PC-701(백두산) 함장 * 1953.07.07.-1953.09.13. 해병학교장 * 1959.03.03.-1959.11.05. 해병 제1여단장 * 1964.01.20.-1964.07.28. 해병 제1사단장 |
| 1923년 10월 15일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난 최용남 함장은 1950년 4월 10일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PC-701) 제2대 함장 직책을 맡았다. 북한의 무력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함선의 남하를 저지하라는 해군본부의 작전명령을 받고 긴급 출동하여 동해로 향하던 중 6월 25일 오후 8시 12분 울산 앞바다에서 정체불명의 선박을 발견하고, 확인한 결과 북한 특수부대원 600여명이 탑승한 1천톤급 무장 수송함으로 식별하였다. 함장은 적함을 격침시켜야만 부산, 그리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과감하게 적함에 근접하여 포격을 가해 마침내 6월 26일 01시 38분 부산 동남방 대한해협 해상에서 격침시켰다. 대한해협해전의 승리로 아군에게 유리하도록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고 전쟁기간 중 유엔군 병력 590만명, 군수물자 5500만 톤, 유류 2200만 톤 등을 부산으로 수송할 수 있게 함으로써 위기에 처했던 대한민국을 구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 전공으로 정부는 최용남 함장에게 최고의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호국의 인물로 선정 현양하고 있으며, 해군은 최용남 함장의 군인정신과 빛나는 무공을 기리기 위하여 흉상을 건립하였다. |
| 2016.06.26. |

| 김창학 해군 이등병조(현재 하사) (1929.11.29.-1950.06.26.) |
| 1929년 11월 29일 경기도 평택군에서 태어난 김창학 이등병조는 1948년 해군에 입대하였으며 6.25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대한해협(부산 앞바다) 해전에서 불법 남침한 북한 군함과 싸우다 적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나라에서는 백두산함 조타사로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조타기를 놓지 않고 침로 유지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여 적함을 격침시키고 나라를 지키는데 공헌한 김창학 일등병조에게 1계급 특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해군은 대한해협 전승 60주년을 맞아 6.25전쟁 당시 남한의 전후방을 동시에 교란하여 한반도를 적화하려했던 북한군의 기도를 저지하고 부산을 사수했던 대한해협해전 전승 의의를 전 장병, 참전용사, 부산시민이 함께 되새기며, 대한해협해전의 영웅 고 김창학 이등병조의 목숨바쳐 나라를 지킨 숭고한 뜻과 정신을 길이 기리고 계승하고자 그의 흉상을 건립하였다. |
| 2010.6.24. |

소련 해군과의 전투였을 수도 있다는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백두산함과 그 배에 타고 있던 대한민국 해군의 분투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조국을 지키고자하는 노력으로 부산은 전쟁의 불바다를 피할 수 있었고, 한국전쟁 당시 국군와 유엔군의 반격의 기회를 제공해준 자유주의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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