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분열을 통합한 영웅이라고 전하는 비슈케크 바티르의 기념비
2021년 4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친기스 아이트마토프 공원(Парк им. Чынгыза Айтматова)의 서남쪽에 비슈케크 바티르 기념상(Памятник Бишкек баатыру)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동상 하나가 세워집니다.
24kg에 따르면,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전설적인 인물은 타가이의 후예 중 솔토(солто) 씨족 혹은 쿠울의 후예 중 사루(саруу)씨족이라고 합니다.
잘랄아바트 지역의 악시 계곡(Аксыйской долине)에서 태어나 독서와 무예를 갈고 닦으며 자랐고, 시간이 지나 알라메딘강(река Аламедин) 상류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결혼 등으로 이후 분열된 키르기스민족을 통합한 뒤, 곧 지금의 비슈케크 지역으로 옮겨와 마을을 세웠다고 합니다. 18세기 카자흐 한 아빌라이한(Абылай хан, 1711-1781)의 침략에 맞서 민병대를 조직해 적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 영웅적 업적으로 그를 영웅 비슈케크(Бишкек бааты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 이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후, 실크로드에 그가 묻힌 곳을 중심으로 피슈페크아타(Пишпек-Ата)라는 요새가 형성되어 이 도시가 현재의 비슈케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합니다. 다만,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전설이 소련 성립 이후에 나왔다고 주장하며 신빙성이 있을지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군수품 동상도 있고, 뒤쪽에는 어떤 문양이 그려진 흰 원판도 보입니다.
이 동상의 뒤쪽 단에는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비슈케크 바티르 - 키르기스 공화국 수도의 창립자(Бишкек Баатыр — основатель столицы Кыргызской Республики)'라는 구절이 쓰여 있습니다. 원래는 역사적으로 그가 비슈케크를 지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 비슈케크는 그 어떤 문구도 없는 상태의 기념상을 세울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으나, 조각가는 결국 이 문구를 집어넣었죠. 이에 역사학자들은 반발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지만, 수정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비슈케크 바티르는 18세기 분열된 키르기스 부족들을 통합하고, 안정시켰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그는 자신의 민족과 도시를 위해 헌신한 진정한 영웅의 본보기로 여겨졌기에, 이런 청동상이 세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