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민족학의 대부를 기념하다, 비슈케크국립대학교의 쿠세인 카라사예프 기념상


2025년 3월 12일부터 13일까지 키르기스스탄에는 타지키스탄 대통령이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중심로에는 경찰들이 쭈욱 서있었고, 곳곳에 키르기스스탄 국기와 함께 타지키스탄 국기도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광판에는 타지키스탄 대통령의 키르기스스탄 방문을 환영한다는

어찌되었든 이 날 저는 비슈케크 남쪽을 방문했다가 칭기스 아이트마토프 대로(Проспект Чынгыза Айтматова)를 따라 집으로 가고 있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길 왼편에서 멋진 건물을 발견했는데!

바로 쿠세인 카라사예프 비슈케크국립대학교(Бишкек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 К. Карасаева)입니다! 1979년 러시아어 및 문학 교육 단과대학으로 시작해 2025년 기준 46년 동안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979.05.29.-1992.06.16. | 프룬제러시아어문학교육연구소(ФПИРЯЛ) (러시아어문학교육연구소(ПИРЯЛ)) |
1992.06.17.-1994.05.07. | 언어인문학국립연구소(ГИЯиГН) |
1994.05.08.-2019.07.09. | 비슈케크인문대학교(БГУ) |
2019.07.10.- | 비슈케크국립대학교(БГУ) (쿠세인 카라사예프 비슈케크국립대학교(БГУ имени К. Карасаева)) |


이 학교의 앞에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키르기스스탄 및 소련의 언어학자, 사전편찬자, 교육자, 문예학자,민속학자 및 투르크학자였던 쿠세인 카라사예프(Кусеин Карасаев, 1901-1998)입니다. 1916년 중앙아시아 반란의 영향으로 중국으로 잠시 대피해서 양치기로 일하다가 1921년 귀국합니다.

이후 중앙아시아 국립대학교(Среднеазиат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1923-1959, (현) 우즈베키스탄국립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 중국잡지사 직원, 중앙아시아국립대학 교수, <자닐릭(Жаңылык)> 집필 프로젝트 일원 등으로 근무하다가 1928년 레닌그라드동양연구소(Ленинградский восточный институт, 1920-1938) 튀르크학신학교(тюркологическая семинария)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언어학을 가르칩니다.
1931년, 그는키르기스문학연구소(литературный институт Киргизии)으로 와 민속학을 연구합니다. 특히 그는 민속학 표본 수집 지침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민족서사시 <마나스>를 직접 녹음하기도 하는 등 키르기스 민속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쿠세인 카라사예프 기념상(Памятник академику К. Карасаеву) 뒤로 가봅니다. 브구(БГУ)라고 적힌 곳 뒤 편에 태극기와 다른 국기들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뒤 건물은 페르시아식 궁전 입구를 연상케하는 복도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등장한 대학 본관. 사막에 지어진 도시가 연상되는 듯한 형태의 입구입니다. 이곳이 바로 교육대학에서 시작된 비슈케크국립대학교의 정문입니다. 키르기스 민족학의 대부, 쿠세인 카라사예프는 비슈케크를 대표하는 대학 중 하나인 이 비슈케크국립대학교는 그의 업적 처럼 민족 학문의 대부가 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