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어 알파벳을 처음 만들고 처음 교수가 된, 카심 티니스타노프 기념상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필아르모니야(필하모니아) 아래 젊은이 가로수길(Аллея Молодёжи)의 북쪽 끝부분에서 서쪽의 공간에 카심 티니스타노프 기념상(Памятник К. Тыныстанову)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식쿨 지역에서 태어난 카심 티니스타노프(Касым Тыныстанов, 1901-1938)는 키르기스어학과 현대키르기스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며, 시인, 극작가, 교육가, 공인, 언론인이면서 키르기스 최초의 교수이기도 합니다.
가난한 농부였지만 교육열이 높았던 아버지에게 아랍어를 배웠으며, 학교를 다닐 땐, 일을 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는데, 1916년 러시아 제국의 차르 정부(1721-1917)에 대한 반란(1916년 중앙아시아 반란)이 실패하여, 부모님과 함께 중화민국(1912-)으로 도망갔다가 1917년 러시아 정부가 망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선 공부를 할 수 없어 타슈켄트의 카자흐 인민계몽 연구소(Казахский институт народного просвещения, 1920-1933)에서 공부를 진행합니다.
학업을 하면서 그는 키르기스어 알파벳을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그 문자로 대본도 쓰기 시작합니다. 이후 글을 쓰는 신문의 편집장도 되었는데, 1938년 8월 1일 대숙청으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체포되었다가 세 달 뒤 처형당합니다. 사후 약 19년이 지난 1957년에 그는 다시 복권되었죠.
1992년, 그의 고향 이식쿨에 세워진 이식쿨국립대학교(ИГУ, 1940-)은 그의 이름을 따, 카심 티니스타노프 이식쿨 국립대학교(Иссык-Куль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Касыма Тыныстанова< 1992-)라고 명명되었으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발행된 10솜에서 그의 초상화를 그려넣기도 했구요. 카심 티니스타노프 거리를 만들고, 이 글에서 소개한 키심 티니스타노프 기념상을 세우는 등 이후 키르기스스탄은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