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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에서 창조신 마고할미에게 제를 드리다, 마고당

호기심꾸러기 2025. 1. 3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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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에 널린 너덜겅이 보이는 넓은 등산로 중간, 정상까지 3550m, 장산마을까지 2800m, 중봉까지 1800m가 남은 지점에서 갈림길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좁은 돌길로 이어진 곳으로 가면 중봉, 천제단, 마고당이 나온다고 하네요.

갈림길에서 약 18~20분 정도 올라오면 금줄[禁-]이 걸린 돌 건축물이 보입니다.

마고당(麻姑堂)
아득한 1900여년전 신라 탈해왕 23년경(서기 79년경) 이 일대를 장산국이라 하여 거병 30명의 부족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조선조 중엽부터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육림, 벌채하였으며, 서기 1714년 이래 동하면민(東下面民)이 기우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마고할머니를 모신 제당을 세워 정월, 육월에 제를 모시고, 질병예방과 풍농, 풍어를 기원하였다는 기록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동하면고문서(좌동경로당 보관중 1992년 시립박물관에 기탁한 총 36책)> 가운데 <동하대동중절장산신당중건모록문(東下大洞中節萇山神堂重建募绿文)>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300년 가까이 좌우중동 등의 여섯 마을에서 유번제로 제를 모셔오던 중, 근년에 와서 음력 정월에 제를 올리고 그 연원을 이어오고 있는 신성한 제당입니다. 신당 경내에는 무속, 가무, 촛불, 취사 등 일체의 사행위 및 자연훼손 행위를 금해주시기 바랍니다.
서기 2000년 4월 5일

장산신당보존위원회
해운대구청장
해운대경찰서장

자연석으로 둘러진 돌담 사이를 지나면 바로 오른편에 돌로 쌓은 작은 제사장이 있습니다.

거도(居道)는 그 족성(族姓)을 잃었고(전하지 않고), 어느 곳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을 섬겼고, 간(干)이 되었다. 이때 우시산국(于尸山國, 울산 남부), 거칠산국(居柒山國, 부산 중부)이 인경(隣境)에 끼어 살아 자못 국환(國患)이었다. 거도(居道)는 변관(邊官)으로서 아울러 삼킬 뜻을 은밀히 품고, 매년 한 번씩 장토지야(張吐之野, 장토의 들)에 군마(群馬)를 모아 병사(兵士)를 부려 말타기[騎]를 했다. 말타고 달림[馳走]으로써 희악(戱樂)하게 하니, 당시 사람들은 마숙(馬叔)이라고 불렀다. 양국(우시산국, 거칠산국)사람들은 익히 보았기에 신라(新羅)의 상사(常事, 예삿일)라 여기고, 괴이하다고 하지 않았다. 이에 병마(兵馬)를 일으켜, 그 불의에 공격하여 두 나라를 멸했다.

- <삼국사기><열전 제4><거도>

서기 57년부터 서기 80년까지 재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라의 탈해 이사금(?~80) 때에 거도(居道, ?~?)가 울산 남부의 우시산국과 함께 부산 중부의 장산국 혹은 거칠산국을 복속했다고 하는데, 이 때 이 '거칠산국'이 바로 해운대구를 포함한 부산 중부에 있었던 '장산국'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엄청 오래전부터 이 부근에 사람이 살았다는 뜻이죠.

제사장을 나와 돌담벽과 계단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면~

상산마고당(上山麻姑堂)이라고 쓰인 현판이 있는 신당(神堂) 본당이 있습니다.

제단 내부에는 상산마고령상신위(上山麻姑靈上神位)이라고 쓰인 신위가 있습니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봅니다~

제당을 남쪽에서 봤을 때 동쪽으로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장만하는 부속건물이 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맑은 옹달샘이 있습니다. 등산객이 마실 수도 있는데, 제사 때에는 신선이 마시는 물로 바쳐집니다.

이 아래로도 금줄이 처진 남쪽 입구가 보입니다. 300년 가까이 창조신 마고할미를 기리는 장산은 그 크기도 크기지만 민속적, 역사적, 종교적으로도 정말 중요한 산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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